ADVERTISEMENT

신작 '미인' 개봉 앞둔 여균동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항간에는 여균동(42) 감독의 '미인' (12일 개봉)이 제2의 '거짓말' 이라는 말이 돈다.

인터넷 성인 방송 4곳이 '미인'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올려 인기를 끌고 있고, 영화사 측에서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동영상을 올렸더니 한꺼번에 8만여 명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 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화제가 된 '미인' 은 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표현 방식은 '거짓말' 과 다른 작품이다. '거짓말' 이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몸을 통해 보는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마치 누드화집 같지만 심의에서 잘려 나간 곳은 거의 없다.

"몸은 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신체 특정 부위 과도하게 보여주는 일은 없으며 기존 정사 장면과는 색깔과 느낌이 다르도록 했다." 여감독은 이를 위해 현대무용가 안은미씨에게 남녀의 몸 동작 지도를 부탁했고 카메라 앵글은 두 남녀 배우의 근육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포착한다.

베드신 장면의 목선, 쓰러질 때의 자세와 손놀림, 춤추는 모습까지 안씨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누드 모델(이지현)은 우연히 인터뷰 잡지 기자(오지호)를 만나 서로 몸에 탐닉한다. 여자는 옛 애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남자와의 육체 관계를 통해 위로받는다는 이야기의 원작은 1998년 여감독 자신이 펴낸 중편소설 '몸' 이다.

"연극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주연 배우들이 신인이라 두 달간 리허설을 한 후 작품을 찍기 시작한 과정이 흥미로웠다. 특히 음악을 맡아준 노영심의 피아노 선율이 작품과 잘 맞아 떨어져 만족스럽다. "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여 감독은 헤겔.루카치 관련 서적을 번역했는가 하면 유신독재에 맞서다 긴급조치 9호 위반자로 구속까지 된 젊은 시절을 넘어 지금은 방송진행자.CF모델.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와 '주노명 베이커리' 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의 영화연출은 '세상밖으로' '맨?' '죽이는 이야기' 에 이어 네번째.

이런 이력을 지닌 그에 따라붙는 이미지 하나는 성에 대한 집착이다. 포르노에 병적으로 몰두하는 세 주인공의 몽상적 세계를 그린 '맨?' 이 그렇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에선 발기불능자 역을 맡기도 했다. 다른 작품에서도 성에 대한 관심은 뚜렷하며 결국 '미인' 에까지 이어진다.

그는 "성은 취향이다. 그리고 성은 예술의 유용한 창작도구다. 직접적이고 정서적인 생산 수단을 마다할 이유가 뭔가" 라면서도 "아마 70년대 권력이 득세하고 모성이 사라진 시절을 살아온 모래시계 세대의 저항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그는 국가보안법을 소재로 한 단편 블랙코미디 '내 컴퓨터' 를 발표했다. 문제의식이 짙은 소재의 단편 시나리오만 30여 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내 컴퓨터' 의 경우 장편제작 제안을 받았으나 그는 "아직 부담스럽고 때가 아닌 것 같다" 며 고사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성이 배제된 개인의 자유를 주제로 한 로드무비가 될 것이라는 여감독은 " '미인' 에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호흡이 부족함을 느꼈는데 앞으로 그 부분을 채워갈 것" 이라고 말한다.

'미인' 은 몸을 통해 사랑을 이해하려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그 낯선 노력을 관객들이 소화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