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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실체를 벗긴다] 8·끝 일본 지놈 전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와코(和光)시의 이화학연구소. 약칭인 '리켄(理硏)' 으로 통한다.

올해 예산이 7백50억엔이 넘는 초대형 연구소다. 도쿄(東京)의대 생명과학연구소와 문부성 산하 국립유전학연구소와 함께 일본의 3대 지놈연구기관이다. 이곳의 지놈과학종합연구센터(GSC)에는 박사급 80명 등 2백50여명의 연구원이 일한다.

오는 10월 요코하마(橫濱)로 옮길 예정이라 주요 설비가 포장돼 있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한달여 전 세계적인 뉴스가 이곳에서 발표됐다.

세계 최초로 인간의 21번째 염색체의 DNA 염기배열을 해독한 것이다. 다운증후군.백혈병 등 유전질환의 치료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자료다.

와다 아키요시(和田昭允)소장은 "몇몇 프로젝트는 구미 각국보다 GSC가 먼저 시작했다" 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지난 4월에는 지놈의 응용을 담당하는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 벼의 지놈연구를 주도하는 식물과학연구센터, 개인별로 서로 다른 유전자염기(SNP)를 다루는 유전자 다형연구센터를 신설했다.

GSC는 '바이오 인텔리전스' 라 부르는 뛰어난 지놈연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유전자.지놈.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각 연구그룹이 개별 연구하는 동시에 생체내의 반응.상호작용과 응용까지 일관공정으로 연구하고 있다.

연구추진부의 모토키 이치로(元木一朗)는 "연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으로 이를 세계표준화하는 것이 목표" 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지놈연구는 리켄 등 정부산하 연구기관이 리드하는 관(官)주도형이다.

지난해 21세기 일본의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밀레니엄 프로젝트' 를 마련하면서 지놈연구를 중점 국책사업의 하나로 선정했다.

올해 이 프로젝트의 총예산 1천2백6억엔(약 1조2천5백억원)중 절반이 넘는 6백40억엔을 지놈연구에 배정했다. 이외에도 생명공학연구에 별도로 7백96억엔을 투입한다.

일본정부가 추진 중인 지놈연구의 당면목표는 치매.암.고혈압.당뇨병.천식의 일본인 5대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 기능을 밝혀 환자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주문의료' 를 실현하는 것이다.

유전자정보를 바탕으로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을 종전보다 20%포인트 높이는 획기적인 신약개발에도 나서기로 했다. 뼈.혈관.피부 등의 재생의료기술 개발도 중요한 목표다.

벼를 중심으로 한 식물 지놈연구는 질병예방.건강유지를 위한 새 품종과 생물농약의 개발이 핵심이다.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기능성 음식도 개발하고 있다.

기업들도 적극적이다. 4월말 소니.아지노모토.올림퍼스광학.다케다약품.캐논.샤프.후지쓰.혼다.니콘.마쓰시타전기.히타치.NEC.NTT 등 28개사가 참가해 지놈관련기술추진회의를 발족했다.

다케다약품.산쿄.야마노우치 등 가장 큰 이해가 걸린 제약회사 10여개사는 별도로 10억엔(약 1백5억원)을 갹출해 올 여름부터 지놈 공동연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전문가들은 기초연구보다 실용화에 앞서 온 일본 특유의 강점이 지놈사업에서도 재현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전자 지도는 미국이 먼저 만들지 모르지만 이를 활용해 보물을 찾아내는 것은 일본이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장상구(張相九)주일과학관은 "정부가 밀고 기업이 뭉쳐 실용화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일본 지놈연구사업의 특징" 이라고 말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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