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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 ‘텅 빈 가슴’ 노래로 채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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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찾아가는 맞춤형 노래교실’ 강사인 채우리씨(왼쪽)가 좌부동 초원아파트 주민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노래가 인생의 전부가 된 30대 후반의 여성.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가졌던 ‘가수의 꿈’을 뒤늦게 이룬 뒤 주위 사람들에게도 ‘노래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산 출신의 가수 채우리(36·여·본명 김대희)씨 얘기다. 음반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산과 천안에서 이미 유명한 가수다. 공연·축제 때마다 초청이 줄을 이어 스케줄이 빡빡하다. 아무리 바빠도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빼놓지 않는다. 노래를 부를 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채씨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이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는 장윤정 못지 않은 유명한 가수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시 순회노래교실 강사 채우리씨

15일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노인정. 강사인 채우리씨와 14명의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이 아파트에 사는 40~70대 아주머니들로 아산시가 마련한 ‘찾아가는 맞춤형 여성교육 노래교실’ 수강생들이다. 아산시 가정복지과는 초원아파트를 비롯해 5개 아파트단지에서 노래교실을 운영 중이다.

이날은 가수 송미나의 ‘웃고 살자’를 배웠다. “일년 이년 십년 세월 노래처럼 불러볼까~” 각자 손에 든 악보를 보며 박자와 음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초등학교 때 음악책을 든 소녀처럼 보였다. 채씨는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을 가르칠 때마다 악센트와 높낮이, 장단을 꼼꼼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텅 빈 가슴’이란 구절은 ‘텅빈 가~~슴’으로 부르는 식이다. 그래야 노래의 참 맛이 난다고 했다. “노래를 부를 땐 가사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채씨의 주문이 이어졌다.

전국노래자랑 출연이 인생 바꿔

그는 “자신감을 갖고 불러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모두들 처음엔 쑥스러워하지만 한 번 무대에 오르면 자신감을 갖는다고 했다. 일방적으로 주문만 하진 않는다. 성격과 스타일에 맞게 적절히 지도한다. 노래를 다 배우고 난 뒤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연습을 했다. 노래방 기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얼굴엔 ‘새로운 노래 하나를 또 배웠다’는 뿌듯함이 엿보였다. 이날은 노래교실 마지막 수업으로 수강생들은 채 강사와 함께 조촐한 파티도 열었다.

채씨는 21살 때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탔다. 평소 ‘한 노래 한다’는 말을 많이 듣던 차에 한가위 특집 생방송을 한다기에 신청했다. 그 때 부른 노래가 석미경의 ‘물안개’다.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아산으로 오게 된 채씨는 3년 전쯤 ‘노래교실을 맡아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작곡가에게 노래를 배우고 자격증(가요강사)도 땄다. 이름도 김대희에서 채우리로 바꿨다. 채우리라는 예명은 한 스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고 알려지라’고 붙여준 이름이란다. 이 때부터 아산과 천안을 오가며 노래를 가르쳤다.

노래실력이 알려지자 채씨를 초청하기 위해 줄을 선 기관·단체가 적지 않다. 그는 홍성내포가요제와 고창국화가요제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노래실력 하나만큼은 아산·천안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채씨는 아직 음반을 취입하지 않았다. 음반을 내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곡도 받아야 하고 금전적인 뒷받침도 따라야 한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채씨는 “빠른 시일 내 나의 노래를 갖고 싶다”고 했다. 채씨는 이선희의 오래 된 팬이고 안치환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즐겨 부른다. 노래교실에선 주로 트롯을 가르치지만 감미로운 발라드도 사랑한다.

후진 양성 위해 노래교실 열어

채씨는 지난 7월 초원아파트 정문 앞에 노래교실을 열었다. 전문적으로 후배를 키우기 위해서다. 4명의 수강생이 노래를 배우고 있다. 아산에서 가요강사 전문반을 운영하는 곳은 ‘채우리 노래교실’이 유일하다. 한국가요강사협회에 소속돼 있는 채씨는 충남가요강사협회 총무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노래 뿐만 아니라 MC나 이벤트·레크리에이션 쪽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좋은 공연을 지역에서 기획해보고 싶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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