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탄 은행 구조조정] 정부 해법·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7일의 정부 발표로 은행 구조조정의 골격과 방향이 드러났다. 당장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법이 마련되는 대로 다음달께 한빛.조흥.외환 등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들을 하나의 금융지주회사아래 묶는 방안을 내놓게 된다.

뒤이어 국민.주택.신한 등 우량은행들은 이미 대형화한 경쟁 은행에 맞서려면 합병 등의 대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게될 전망이다.

은행들의 덩치가 커지고 업무영역도 확대됨에 따라 투신.증권.종금 등 다른 금융권도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야만할 상황이다.

정부 구상은 은행의 통합.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깨끗한 은행으로 거듭나 시장의 신뢰를 되찾음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정상화에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기능을 상실한 투신사에 4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더 넣고, 비과세 상품까지 허용하는 파격적 지원방안을 내놓았지만, 아무래도 투신 정상화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리라는 게 정부 생각이다.

또하나 기대는 금융지주회사가 공적자금의 회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부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주식보다는 지주회사 주식이 국.내외 매각에 보다 수월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비우량 은행들을 묶는 것은 인력감축 등 당장의 구조조정의 고통을 회피하는 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덩치만 커진 은행이 근본적인 수익개선.경쟁력 향상을 이룰지는 미지수라는 비판도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 공적자금 투입은행은 지주회사로〓정부는 한빛.조흥.외환은행을 지주회사 아래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평화은행은 틈새시장을 겨냥한 소형은행으로 계속 남을지 아직 미정이다.

지주회사는 우선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으로 출자한 은행주식을 현물출자하고,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현금출자도 받을 예정이다. 예금공사 이외 출자자들에겐 은행법상 동일인 출자한도 4%가 계속 적용된다. 정부는 그러나 예금공사 지분을 매각할 단계에선 동일인 출자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지주회사아래 묶인 은행들은 일단 인터넷금융 등 새로운 투자를 공동으로 하면서 비용절감을 꾀하게 된다. 기획.관리 등 후선 업무도 지주회사쪽으로 점차 넘겨 줄여나간다.

정부는 다음 단계로 기존 은행들을 해체하고, 기업금융.소매금융.투자금융.전자금융 등 특화된 은행들로 재설립한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합병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 은행주식은 어떻게 되나〓새로운 금융지주회사와 그아래 묶이는 기존 은행들의 주식이 증권거래소에 동시에 상장돼 거래된다. 기존 은행주식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은 금융지주회사 주식으로 바꿔 거래하든, 기존 주식으로 거래하든 선택할 수 있다.

만약 기존 은행주식 값이 액면가인 5천원이 되면, 지주회사 주식과 1대1 교환이 가능해지며 액면가보다 더 오르면 그 만큼 지주회사주식을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주회사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기존은행들은 부실을 털고 깨끗한 은행이 되는 만큼 주식값은 액면가를 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 밝혔다.

기존 은행주식 값이 액면가를 넘으면 지주회사 주식 매각을 통해 공적자금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한편 장기적으로 기존 은행들이 해체돼 업무영역별로 특화된 새 은행들로 바뀌는 시점에서는 기존 은행주들을 모두 지주회사 주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 우량은행은 인센티브로 합병 유도〓다른 우량은행들의 합병은 인센티브를 통해 유도된다.

시장 자율에 맡기되 업무영역 확대.후순위채 매입 등 '당근' 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새로 탄생하는 대형 정부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우량은행들의 자발적 합병 시도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문제는 없나〓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하면 구조조정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수익성.경쟁력을 높이는 등 은행 구조조정의 본질은 미뤄두고 우선 단순히 덩치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진 만큼 부실이 커져도 퇴출시키기가 어려워진다. 일본의 경우 다이치 강교.후지.니혼고교은행 등 3대은행이 연내 지주회사를 설립해 오는 2002년까지 합병한다고 발표했지만, 일본국내에서마저 이를 구조조정 지연을 위한 방책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최공필(崔公弼)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쟁력 없이 덩치만 키운 비우량 은행이 탄생할 수도 있다 "며 "부실책임과 손실부담의 원칙없는 통합은 은행권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정부지원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통합에 앞서 수익모델을 만들어 놓는 것은 물론 인력.조직 구조조정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인석(申仁錫)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의 핵심은 인력감축인데 금융지주회사로 우선 통합부터 하고나면 통합 노조의 반발 등 구조조정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며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의 경우, 미래의 수익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비우량은행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통합효과는 미지수" 라고 말했다.

김광기.이정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