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회의장 당적이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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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임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5일 오후 16대 국회 개원식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사봉을 칠 때 한번은 여당을 보고, 한번은 야당을 보고, 또 마지막으론 국민을 바라보겠다. "

그는 당선 인터뷰에선 "양심과 정치생명을 걸고 공정한 국회운영이 되도록 엄숙히 약속한다" 고 했다.

이 말들은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여야를 초월한 중립적인 국회 운영을 하겠다는 다짐들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의 흐름을 보면 李의장의 다짐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속속 늘고 있다. 당장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법안과 선거사범 수사의 편파성 논란 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무소속)을 주문하는 목소리들이 계속 나온다. 날치기나 편파적인 국회운영 위험성을 줄이자는 뜻에서다.

문제는 신임 李의장이 민주당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점이다. 탈당하면 의원직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이는 당초 비례대표 의원을 의장에 내세운 민주당의 원초적 잘못에서 비롯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6일 중국으로 떠나면서 1970년대 말 박정희정권이 유정회 의원인 백두진씨를 국회의장으로 뽑았던 사례를 들어 "국민대표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비슷하다" 고 지적했다.

현행 선거법 제192조 4항은 '비례대표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하면 퇴직된다' 고 규정했다. 의원들의 당적 바꾸기가 줄을 잇자 94년 통합선거법을 만들면서 집어넣은 조항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선거법을 고쳐 '국회의장 예외조항' 을 두자고 하고, 한나라당은 법에 자꾸 예외조항을 만들기보다 민주당이 李의장을 제명,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라고 요구한다.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은 방법론을 가지고 다툴 사안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게 사석에서 만난 대다수 의원들의 얘기다.

민주당과 한나라당간의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떻게 당적을 이탈할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민주당 출신 한 중진의원도 "국회의장이 특정 정당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를 끌어가고, 국회의 권위를 되찾아 달라는 게 국민요구" 라고 말한다.

李의장과 여야는 방법론을 놓고 시간을 끌지 말고 적절한 타결책을 모색해 국회의장의 당적이탈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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