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속철 수사 변죽만 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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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과연 정치적 중립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소극적인 수사 의지를 꼬집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과정의 로비사건과 사회 지도층 병무비리에 대한 수사가 변죽만 울린 채 끝내기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로비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수사에 착수한 시점.배경.과정 등에 대한 검찰의 설명 중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1997년 서울지검 외사부가 내사를 중단됐다가 2년 뒤 돌연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착수한 과정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검찰은 "공범인 扈기춘씨의 구속을 통해 주범인 崔만석씨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 주장했다. '공소시효 만기를 명분으로 그냥 덮을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오히려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였다' 는 게 검찰의 강변이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내사가 중단된 이유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있어 검찰 주변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고 관측하고 있다.

또 崔씨가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곧바로 잠적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崔씨가 외국으로 달아난 흔적을 발견하고도 책임 추궁을 우려, 국내 잔류설을 고집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이로 인해 "검찰이 정치적 목적에서 수사에 착수했다가 일이 꼬이게 되자 崔씨 잠적을 명분으로 발을 빼고 있다" 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은 "崔씨가 외국에 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고, 고의로 그를 잠적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슨 책임추궁이냐" 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미국 LA에서 崔씨를 목격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다 "崔씨가 검찰 출두에 앞서 검찰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했다" 는 일각의 관측도 검찰의 수사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결국 총사업비 18조원이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 사업' 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가정주부인 호기춘씨 1명을 구속 기소하는 초라한 실적으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특히 정치인 아들의 병역비리 수사는 선거를 앞두고 모종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시작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지난 3월 중순 4.13총선을 불과 한달 앞두고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은 "다시는 이땅에 병역비리가 없도록 하겠다" 며 정치인 등 사회고위층의 병역비리에 대한 수사를 선언했다.

이에 맞장구쳐 수사반은 "정치인이나 병역비리 혐의가 있는 그의 아들들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명단을 공개하겠다" 는 등 성역없는 수사를 외쳤다.

하지만 검찰이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본 27명의 정치인 자제들에 대한 조사 결과 한나라당 김태호(金泰鎬)의원 1명만 기소됐을 뿐 나머지는 무혐의 처리로 끝날 조짐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미 선거가 끝난 상황에서 정치인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저버린 것" 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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