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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산뜻한 즐거움 준 '문화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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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97년부터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는 격년으로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동양음악을 주제로 하는 '샤르크 타로날라리(sharq taronalari)' 페스티벌이다. 고색창연한 이슬람 사원의 광장에서, 그것도 반(半)사막의 청명한 별밤 속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매우 인상적이다. 사막의 낭만과 실크로드의 전설이 어우러지는 개.폐회식은 그야말로 장엄한 판타지다.

필자는 첫회부터 3회 연속 심사위원.위원장으로 참여하며 문화의 소중함을 절감한 바 있다. 문화와 예술은 서로간의 울타리를 일시에 녹여내며 지구촌을 하나의 동심원으로 엮어낼 수 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절실하게 떠오른 게 '문화 올림픽'이었다. 스포츠 올림픽이 인류를 열광시키듯 문화올림픽이 탄생하면 세상은 한결 밝고 평화로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10여명의 심사위원끼리 환담하며 '샤르크 타로날라리'를 계기로 문화올림픽을 기획해 보자고 제의했다. 근대 올림픽을 탄생시킨 쿠베르탱 남작의 명예처럼 빌 게이츠와 같은 세계적 부호에게 문화올림픽 창시자의 영광을 돌리면 재원도 가능할 것 아니냐고 했다. 당시 유네스코 본부에서 온 한 심사위원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유네스코와 공동 주최로 하고, 이름을 '아리랑 페스티벌'로 하는 것도 좋겠다며 적극 공감했다.

아무튼 절실하게 소망하던 문화올림픽이 뉴욕대회에 이어 '동방의 진주' 서울에서 열렸다. '세계문화오픈(WCO) 2004'가 그것이다. 12일 서울시청 앞 개회식부터 15일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폐회식까지 나흘간 펼쳐진 풍성한 무대는 시대를 고뇌하는 문화 애호가들에겐 진지한 사색의 자리였다. 70여개국 350여 단체가 뿜어내는 각양각색의 소리.언어.몸짓.색깔은 재삼 가치관의 다양성과 삶의 다채로움을 실감시켰다. 또 그러한 다양성의 조화야말로 진정 아름다움의 극치요, 평화구현의 첩경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절실하게 각인시켰다.

주최 측이 표방한 주제의식도 조화와 상생과 평화라는 단어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들 세 단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어울림, 즉 조화의 개념이다. 이(異)와 동(同)의 조화, 강(强)과 유(柔)의 조화, 심(心)과 신(身)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하늘과 땅과 인간이라는 삼재(三才)의 조화, 이 같은 모든 조화의 개념은 결국 상생으로 이어지며 평화를 낳는다.

그러고 보면 음악분야만 하더라도 동서고금의 현인이 왜 그토록 조화의 개념을 모든 가치의 정점으로 설정했는지를 알 만도 하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우주의 조화'로 정의했고, 6세기께 보에티우스는 영과 육의 조화를 일러 '인체음악'이라고 했으며, 공자나 장자도 음악을 '여천지동화(如天地同和)'' 천악(天樂)'으로 서술하며 천균(天均), 즉 조화를 그 궁극 목표로 삼았다.

'WCO 2004'가 조화의 미학을 좌표로 설정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다듬어야 할 구석도 만만찮아 보인다. 우선 주제나 좌표의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방향은 옳지만 표제어가 모두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주제가 포괄적이다 보니 초점이 흐려지고 행사 이미지가 선명히 부각되지 않는 흠이 있다. 장르 구분도 일반적 통념과는 간극이 있다. 건강문화.예술문화.사회문화로 구별하고 있는데, 비록 창의적인 발상이라 하더라도 관례에 익숙한 일반인에게는 왠지 생소하고 혼란스럽다. 특히 문화라는 단어가 지니는 협의의 개념에 세뇌된 기성 문화인의 감각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작은 미비점들에도 'WCO 2004'의 출범은 산뜻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유난히 허탈하고 짜증스러운 오늘 여기 서울 하늘 밑의 사람들에게 한 자락 일진청풍(一陣淸風)의 희망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