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의 실용적 자세를 촉구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5년여만에 대면한 남북 당국자들의 1차 접촉 분위기는 상당히 희망적으로 보인다.

이번 접촉에서 우리측은 의제에 관해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등 베를린 선언을 기초로 포괄적인 제안을 했고 이에 대한 북측의 회답을 가지고 27일부터 실질 토의에 들어가기로 돼 있다.

화기(和氣) 가득한 회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남북당국은 주목해야 한다.

우선 북측 대표가 비록 가볍게 던지긴 했지만 남북문제의 순조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문제' 가 해결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이 있다.

북측이 말하는 '근본문제' 는 언제나 휴전협정.전쟁방지체제 등 정치군사적인 문제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주한미군 문제로 이어져 왔다.

이것은 정상회담 한번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북측도 잘 알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주의제로 올리려 고집하면 회담을 교착상태로 끌고가거나 지나친 대가를 요구하려는 속셈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북측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회담의 형식에 관해서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표현은 신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의 '평양 상봉' 과 '최고위급 회담' 을 따로 언급한 북측 수석대표의 발언을 두고 북측이 그들의 실질적인 정상과 형식적 국가대표를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그 한가지 예다.

이런 불필요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북측이 혹시 무슨 꼬투리를 잡지 않을까 하는 대북불신 탓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북측은 그런 의혹을 빨리 해소해줘야 한다.

북측은 정상회담을 '역사적 사변' 으로 부르는 등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전례없이 진지해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 두 당국의 최고책임자가 만나서 서로에 도움을 주는 문제들에 관해 협의하기 '시작' 했다는 데 의미가 큰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해서도 안되며 어느 한쪽의 일방적 양보가 전제돼서도 안될 것이다.

金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남북 모두에 공동이익이 되는 상호주의에 입각해야 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정부가 성급한 성과를 노리려 하다가는 발목만 잡히고 오히려 대북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을 과거에도 보아왔다.

북측도 상호신뢰 원칙 위에서 과거처럼 지나치게 전술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실용적 자세로 나와야 회담이 잘 풀려나갈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