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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운동 파괴력 발휘 …22명중 13명 '쓴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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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민의 힘이 16대 총선판도를 바꿨다.

총선연대의 '낙선 리스트' 는 당초 지역감정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일부 예상을 뒤엎고 상당수 지역에서 직접적인 '살생부' 가 됐다.

개표 결과 다선 중진의원은 물론 지역감정이 뿌리깊은 영.호남지역까지 거물 정치인들을 낙선시키는 개가를 올려 말없는 시민의 위력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낙선운동은 정치권 개혁과 시민민주주의를 정착시켰을 뿐아니라 선거법 일부 개정의 성과도 거둠으로써 일단 성공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낙천.낙선리스트 선정기준을 제시하고 후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지역과 연고 외에 다양한 판단자료를 근거로 한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 건전한 투표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 성과〓낙선 리스트에 오른 86명의 후보 중 50명 이상이 떨어지는 등 낙선운동의 위력이 예상보다 핵폭탄급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거물 정치인들이 대부분인 집중 낙선대상 지역에서 상당수가 폭발 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의 이종찬(민주)후보는 낙선운동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 총선연대의 지은희 대표가 '전담 마크맨' 으로 집요한 운동을 벌여 유권자의 관심을 촉발시킨 곳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김중위(강동을).이사철(부천 원미을)후보는 낙선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로 총선연대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민주당의 김운환(부산 해운대-기장갑).김동주(부산 해운대-기장을)후보도 당의 한계에다 낙선대상의 부담을 벗지 못했다.

지역감정이 뿌리깊은 영.호남지역에서 일부 집중 낙선대상자의 낙선은 우리 정치의 큰 질곡이 돼온 지역주의에 균열을 가져온 의미있는 결과로 평가된다.

민주당의 한영애(전남 보성-화순).김봉호(전남 해남-진도)후보와 자민련의 한영수(충남 서산)후보의 낙선은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은 소중한 결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성과로는 정치판의 객체로 여겨지던 시민들이 선거과정이라는 정치무대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정치의 '주인' 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낡은 정치에 대한 체념과 무관심을 타파하고 시민의식을 일깨운 것이다.

부패정치의 근원적 문제로 지적돼온 밀실 공천에 문제를 제기, 공천 과정부터 개입해 비록 선별적이긴 하지만 낙천 리스트가 받아들여졌다는 점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선거법 개정과 지역구 축소도 빠뜨릴 수 없는 공로다.

낙선운동은 초기에 불법성 시비로 휘청거리기도 했으나 여론을 등에 업고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제한적이나마 낙천.낙선운동을 합법화했다.

또 선거구 획정과정에 시민단체가 참여, 지역구를 26석이나 줄여 지역 맹주들이 발호할 수 있는 터전을 줄이기도 했다.

낙천.낙선 리스트 선정기준과 선정사유를 소상히 밝힘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풍부한 판단 자료를 제공하고 이에 따라 투표하도록 한 것 역시 두드러진 성과다.

'이같은 정보공개는 선관위가 납세.병역.전과기록 등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예상됐던 정치권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낙선운동 막바지 선관위의 전과기록을 총선연대의 기준으로 재정리, 민주화운동에서의 전과와 파렴치범을 구별.제시함으로써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도움을 주었다.

◇ 한계〓표적 낙선을 내세운 '네거티브 운동' 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낙선 대상을 대신할 대타를 발굴하지 못함으로써 낙선후보의 낙선이 정치권 개혁과 연결될 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선정 과정의 엄격성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운동과정에서 돌출됐던 음모론은 선거 이후까지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또 언론에 의존한 운동방식으로 인해 '풀뿌리 운동' 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서명과 시위성 운동으로 그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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