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이드 감’걱정 끝~ 사과로 익힌 감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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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현대백화점 이진수 과일 바이어(오른쪽)가 사과로 익힌 감들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사과로 감을 익힌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한번 내용을 들어보자. 감은 보통 수확과 유통 과정에서 손상을 막기 위해 덜 익은 상태에서 따서 익히는 ‘후숙(後熟)’ 과정을 거친다. 감을 익힐 때 지난 50여 년간 화학 약품인 카바이드(탄화칼슘)를 썼으나 지난해부터 유해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인공 에틸렌 가스를 이용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찜찜해했다. 그래서 현대백화점은 한때 아예 덜 익은 상태의 감을 팔았으나 이마저 ‘땡감’이라고 외면당했다. 이 회사 손희수 과일 바이어와 납품업체 사람들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감을 익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과가 내뿜는 에틸렌 가스가 과일의 노화를 촉진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때부터 사과로 감을 익히는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한 농가 창고를 빌려 9월부터 20여 차례 실험을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기엔 온도 조절에 실패해 감을 익히는 데 닷새나 걸렸다. 또 사과를 겹겹이 쌓으니 사과 주변의 감만 익었다. 사과에서 나온 에틸렌 가스가 골고루 순환되지 않은 때문이다. 카바이드로 후숙시킬 때와 달리 익는 정도가 균일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실험을 거듭하면서 노하우가 쌓였다. 우선 감을 익히는 최적의 온도가 섭씨 26도라는 걸 알아냈다. 사과에서 나온 에틸렌 가스가 공기와 섞이면서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형 비닐을 사용했다. 넓게 편 비닐 위에 사과를 1단으로 깔고, 과일 틀에 올린 감을 차곡차곡 쌓은 뒤 다시 그 위에 사과를 뚜껑처럼 쌓았다. 그런 다음 바닥에 깔았던 비닐을 보자기처럼 위로 묶듯 감았다. 사과에서 생기는 천연 에틸렌 가스가 비닐 안에서 순환돼 골고루 감이 익었다. 이 방법을 쓰니 감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도 이틀로 단축했다.

사과는 상처나 흠이 있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을 활용했다. 판매할 때에도 감 한 상자에 사과를 두 개씩 넣어 포장했다. 상자 안에서 감의 숙성이 지속되고 사과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손 바이어는 “사과로 익힌 감은 일반 감보다 10~15% 비싸지만 없어서 팔지 못할 만큼 인기가 좋다. 내년 초까지 20t 정도 물량을 생산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사과 에틸렌 가스 후숙 기법을 다른 과일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과로 익힌 천혜향과 참다래도 27일 시판에 들어갔다. 내년 추석에는 조생배와 조생포도도 사과로 익혀서 팔 계획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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