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징기스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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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영웅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추상적이다. 위대한 업적은 신화(神話)가 되고 구체적인 인물은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역사 속 영웅들이 종종 생동감없는 '박제된 영웅' 의 이미지로 남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영화 '징기스칸' 의 미덕은 이같은 기존의 영웅상을 거부한 데 있다.

'동서양에 이르는 대제국 건설' 이란 타이틀을 떼내고 '징기스칸은 어떤 인물인가' 를 그의 내면과 성장기에 포커스를 맞추며 그려 간다. 때문에 징기스칸은 '추상화' 가 아니라 '구상화' 에 가깝다.

소년 테무진과 그의 가족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족장이었던 아버지가 권력투쟁 과정에서 암살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연인마저 다른 부족에게 약탈당한 테무진. 어머니가 잡은 늑대 고기로 혹독한 초원의 겨울을 나며 테무진은 복수를 꿈꾼다.

힘을 기르며 청년으로 성장한 테무진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초원의 통일은 물리적인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와 아내를 통해 터득해가는 지혜와 헌신이 그를 위대하?만든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내몽골 자치주 출신인 사이푸와 말리시가 감독을 맡았다. 베이징 영화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실제 부부 사이. '네명의 기수들' '슬픔의 시내' 등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몽골의 정체성을 담아 왔다.

8천여명의 엑스트라와 1만 마리 말이 동원된 스펙터클한 초원의 전투 장면이 볼거리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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