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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 공룡 수도권] 5.내 몫 챙기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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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수지를 더 따집니다.

택지지구에 부근 난개발 자연취락지를 포함하는 게 합리적인데도 보상액이 커진다며 제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설계 때 공원.학교부지는 가급적 줄이고 택지만 늘리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심지어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심의를 피하려고 일부러 사업규모를 줄이기도 합니다. "

토지공사.주택공사와 함께 택지개발사업에 참여했던 민간 설계업체 관계자의 토로다. 수익내기에 혈안이 된 정부투자개발기관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예다.

공공성보다 개발이익 극대화를 통한 '조직 유지' 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산하기관들이 적자를 내지 않도록 경쟁에 내몬다. 공공기관끼리, 혹은 민간업체와 내몫 챙기기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토연구원 서순탁(徐淳鐸)박사는 "공공기관.민간 건설업체.땅 주인들이 개발이익 욕심에서 합작으로 마구잡이 개발을 부추긴다" 고 비판했다.

◇ '땅 따먹기' 전쟁〓토공.주공간의 용인.파주 등 수도권 부지 선점경쟁은 전쟁과 다름없다.

1997년 7월 토공이 파주 교하지구를 택지지구로 지정하자, 같은해 10월 주공이 곧바로 인근 파주 금촌에 금촌2지구를 지정했다.

경기도는 96년 용인 서북부 구갈3지구를 택지지구로 지정,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다. 이에 지난해 12월엔 주공이 용인.기흥 지역에 구성.보라지구를 잇따라 지정했다. 토공도 질세라 지난 1월 인근 기흥읍에 영신.보정지구를 택지지구로 고시했다.

경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도와 주공은 지난달 기흥읍 일대를 '친환경형 주택모델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행태를 승인, 마구잡이 개발을 방조한 건설교통부의 자세도 큰 문제다.

결국 토공은 93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도내 1천여만평(20곳)을 택지지구로 지정 또는 완공했고, 주공도 같은 기간에 4백여만평(24곳)을 개발했다. 경기도와 시.군 등 자치단체도 3백여만평(18곳)에 아파트를 짓거나 지을 계획이다.

◇ 공공성 외면한 공공기관〓민간건설업체들마저 공공기관들의 개발사업 목적이 '돈벌이' 라고 비난한다.

주공은 지난해 7월 일산신도시 풍동.식사동 일대 24만여평을 택지지구로 지정했다. 지구 안에는 일산의 허파 역할을 하는 '풍동숲' 10만여평이 포함됐다. 하지만 주공은 택지지구 바로 옆 풍삼동 달동네는 제외시켰다. 보존할 곳은 개발하고 정작 개발할 곳은 비켜가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파주시 탄현면에 통일동산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는 토공은 청소년 시설 부지 30만평을 다섯차례나 계획변경한 끝에 모두 상업지구로 변경했다. 적자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책사업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토공.주공의 개발은 대부분 주변지역과 연계를 고려하지 않고 이뤄진다. 개별 단지만 개발하고 빠지는 '치고 빠지기' 식이다. 그 주변엔 민간개발이 확산돼 결국 '묻지마' 개발이 된다.

공공기관의 이같은 행태는 커진 조직의 덩치를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토공의 경우 89년부터 수도권 5개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9백명이던 직원이 1천8백명으로 늘어났다.

토공 관계자는 "80년대까지는 연간 1백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면 조직이 유지됐으나 90년대 중반부터는 늘어난 직원 때문에 연평균 4백만평을 개발해야 한다" 고 털어놨다.

◇ 막대한 개발이익〓89~96년 10만가구가 들어선 분당신도시 개발로 토공은 7천4백25억원을 남겼다. 총 투자비는 4조1천6백억원.

성남시가 토공으로부터 받아낸 개발이익부담금은 1천9백억원. 이중 절반은 건교부에 넘겨줬다. 재산.주민.자동차세와 같은 시세(市稅)는 분당에서 연평균 1천억원을 거둬들이고 있다. 취득.등록.면허세 등은 경기도 차지. 경기도는 분당에서 연평균 1천5백억원에 이르는 도세(道稅)를 받고 있다.

분당 개발에 나선 민간업체들도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은 물론이고 땅 소유주들도 보상비로 벼락부자가 됐다. 참여자마다 푸짐한 개발이익 잔치를 벌인 셈이다.

정재헌 기자

<시리즈 연재순서>

▶1회-폭발하는 특별시

▶2회-개발 소외된 인천시

▶3회-기형 개발 경기도

▶4회-깊어가는 교통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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