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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커스] 475세대와 564세대에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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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75(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생)와 564(50대 60년대 학번 40년대생). 그들은 벤처열기와 총선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그들의 선배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지고 그 과실도 누린 반면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낡고 헤진 근대화의 외투뿐이었다.

더구나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 같은 새파란 젊은이들이 10억, 20억, 아니 1백억원을 예사로이 말하며 벤처바람을 몰아댈 때는 20여년 월급쟁이 세월이 억울하다 못해 한탄스럽고 분하기까지 했다.

정치적으로도 그들은 3金과 386 사이에 낀 세대다. 군부통치와 3金 장기패권에 떼밀려 제대로 자리조차 펴지 못하다가 386세대의 등장 속에서 도매금으로 떼밀려나고 있다는 위기감을 지우기 어렵다.

사회적으로도 그들은 여전히 고개숙인 아버지다. 부인으로부터 능력없다고 구박당하고 아이들로부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문화적으로도 그들은 찬밥이다. 텔레비전을 켜도 그들이 보고 즐긴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도 그들의 마음, 그들의 욕망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뭐 좀 신나는 일이 없을까 하고 다시 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갈 만한 공연장 하나 쉴 만한 모임터 한 곳 변변이 없었다. 더구나 남들은 국제통화기금(IMF) 후유증에서 말끔히 벗어났다는 데 475와 564는 여전히 회복조차 더디다.

그러나 475와 564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을 회생시킬 변화의 바람이 벤처에서부터 다시 불고 있다. 그들을 속 뒤집어지게 하고 도매금으로 날려버렸던 그 벤처 아닌가.

그런데 20~30대 중심의 벤처 최고경영자(CEO)집단이 다시 40~50대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벤처 초기에는 20~30대의 순발력이 돋보였고 또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벤처가 본궤도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역시 40~50대의 인맥과 노련미가 절실히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미국의 선진벤처들은 기술개발과 아이디어 창출은 주니어 그룹에서, 시장개척과 브랜드 관리는 시니어 그룹에서 각각 맡아 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475와 564가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노(老)-장(壯)-청(靑)의 조화가 바람직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회적으로도 475와 564의 재기는 아버지 부재로 무너진 한국 가정의 재건과 직결된다. 문화적으로도 475와 564에게 룸살롱과 원조교제의 오명을 떨쳐버릴 기회를 줘야 한다. 그들의 혈관에는 아직도 60~7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토양을 일궈낸 식지 않은 열정이 살아 있다.

하지만 475와 564가 제대로 롤백하기 위해서는 리콜처리를 받아야 한다. 많지도 않다. 세가지다.

첫째, 미닫이문을 회전문으로 바꿔달라. 미닫이문은 닫혀 있는 채로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반면 회전문은 항상 스스로를 열어둔 채 누군가가 들어오도록 유인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라는 것이다.

둘째, 수성(守城)코드를 공세(攻勢)코드로 전환하라. 공격이 최상의 방어다. 그리고 이제까지 다져온 인맥과 노하우를 결합시켜 한 차원 높은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 즉 모험합작을 결행하라는 것이다.

셋째, 파워시스템을 지구력에서 상상력으로 교체하라. 종래에는 오래 버티는 사람들이 끝내 출세했다. 그러나 새로운 승부방식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누가 먼저 출발하느냐다.

히말라야의 8천m급 봉우리를 등정하기 위해 대략 3천m 수준에서 베이스 캠프를 친다. 3천m! 한반도에서는 그만한 높이를 구경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쳐야 한다. 그래야 차이를 낼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나는 386이다. 나는 서른여덟살이다. 386이 475와 564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되살아야 나라도 살고 미래도 산다. 힘내라 475! 기를 펴라 564!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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