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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색깔'이 왜 나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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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지역감정 부추기기로 일관해온 JP가 드디어 색깔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여권 지도층에 '찬탁한 사람' 이 있다느니 '1950년 공산군이 침입했을 때 대항해서 통일의 기회를 잃었다' 고 말한 장관이 있다느니 하는 발언이 그것이다.

색깔론은 지역감정 부추기기와 별개의 것이거나 느닷없는 문제제기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의 핵심 측근이었던 김용환(金龍煥)씨마저 "50년이 지나 웬 찬.반탁논쟁인지 모르겠다. 총리시절엔 햇볕정책을 지지해 놓고 지금와서 좌.우익을 논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며 "노욕에 의한 선거용 속임수" 라고 했다.

그러나 지역감정 부추기기와 색깔론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실은 일란성 쌍둥이다. 이를 입증하는 조사가 있다.

전남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전남 이미지 실태 연구' 를 위해 일반국민과 전남주민을 비교해 색깔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반국민이 좋아하는 색은 녹색-파랑-흰색-보라-노랑-빨강, 전남주민은 녹색-파랑-흰색-검정-노랑-빨강의 순으로 '보아 일반국민이나 전남주민이나 색감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일반국민에게 전남에서 연상하는 색깔을 물어보자 무려 35.5%가 '빨강' 이라고 답했'으며 그 다음이 노랑(13.4%), 녹색(10.4%)이었'다.

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전남 또는 전남출신 정치인을 끊임없이 붉은 색으로 채색해온 결과다.

따라서 JP가 지역감정 부추기기에 이어 색깔론을 제기한 것은 적지 않은 국민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전라도는 빨갛다' 는 잠재의식을 일깨우고 새롭게 강화해 반사이득을 얻으려는 계산된 노회한 전술이라 볼 수 있다.

비난여론이 들끓자 JP는 말을 바꾸고 더러는 언론보도에 책임을 미루며'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길 바란다" 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소재도 묵을 대로 묵은 것이고 그 근거도 희박하며 논리도 갖추고 있지 못해서 그렇지 자칭 보수의 원조로서 색깔론을 제기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또 지역감정문제 이상으로 색깔론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차라리 기회 있을 때마다 탁 터놓고 쟁점화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색깔이 있고 없고가 무슨 문제이며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는 법이다. 냉전시대의 용어를 쓰자면 좌도 있고 우도 있는 것이다.

그 보수나 진보 혹은 좌나 우가 나라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처럼 색깔이 있다고만 하면 찔끔하는 사회는 전체주의국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색깔 소리만 나오면 펄쩍 뛰며 부인해야 하는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란 말인가.

'그렇다' 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아니라면 '색깔문제에 대한 지나친 발뺌 역시 케케묵고 터무니없는 색깔론 못지 않게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우리 정치엔 색깔이 너무도 없는 것이 문제다. 흔히 냉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빨간색 안경을 끼고 공격대상으로 삼는 민주당도 실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깔이 모호한 무성격의 잡탕정당이다.

재야출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구주의자라 할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정책의 성격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뒤죽박죽이다. 다른 당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보수주의 정당이라면 보수주의자들로 일색을 이루면 좋으련만 거기도 인물이나 정책이나 뒤죽박죽이기는 꼭 마찬가지다.

이런 형편에서 엉뚱하게 색깔론은 무슨 색깔론인가. 우리 정당이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한낱 수단일 뿐이다. 적과 동지의 구분도 없이, 낙천되면 서슴없이 당적을 옮기는 정치 행각도 그래서 빚어지는 것이다.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가 잘못된 것임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연고주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어차피 모든 당이 그저 국회의원 당선 만을 위한 패거리 집단에 불과하다면 연고나 따져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분명해지고 소속원들의 이념적 동질성이 강화된다면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쉽게 열릴 것이다.

개인도, 사회도 갈수록 다양해지리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색깔소리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는 게 너무도 창피스럽다. 색깔이 왜 나쁜가. 오히려 우리는 정당도, 개인도 분명한 색깔을 자유롭게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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