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공천재심 거부"서 한발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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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오전 평소대로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전날 밤 시내의 한 호텔에서 묵은 뒤였다.

그는 공천작업이 본격화한 지난 11일 이후 '집밖 생활' 을 계속해왔다. 李총재는 그러나 미사를 마친 뒤 귀가했다. 공천탈락 시위대가 그의 자택(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양정규(梁正圭)부총재 등 총재단과 이번 공천을 지지하는 고문들에게 "당의 안정을 위해 앞장서 달라" 고 전화했다.

또 공천자들에겐 "흔들리지 말라" 는 내용의 격려전화를 일일이 돌렸다. "정치개혁을 위한 중진 물갈이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는 내용을 강조했다고 한다.

李총재는 "공천 탈락자들로부터 약간의 불만표출은 있지만 결국 잘 수습될 것" 이라는 자신감을 표시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李총재는 '승부수로 던진 공천실험' 의 성공을 위해 수위를 조절해 방어에 나서고 있다.

우선 여론을 자기쪽으로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 '개혁공천의 설득력' 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물갈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야당이 거역할 수 없었다" 고 했고, 맹형규(孟亨奎)총재비서실장은 "李총재의 고뇌의 결단" 이라고 강조했다.

또 당에서는 "이기택.김윤환 고문을 포함한 중진탈락에 대해 '적절한 조치' 라는 답변이 압도적" 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었다.

그러나 내심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李총재측은 20일 밤 긴급 대책회의를 가진 끝에 3개지역의 '공천재검토' 카드를 마련했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서구(공천자 이상렬)와 이기택(李基澤)고문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던 연제구(권태망), 김윤환(金潤煥)고문의 구미(김성조)지역 공천을 다시 할 의사가 있음을 비주류측에 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오세훈(吳世勳).원희룡(元喜龍)변호사 등 386세대 공천자 20여명의 이날 기자회견도 연기시켰다. 이들은 "우리는 새 정치를 위해 입당했을 뿐 이회창계가 아니다" 고 나설 예정이었다.

李총무는 회견 강행을 주장하는 吳변호사 등에게 "당을 정말 소수당으로 만들려고 이러느냐" 며 강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이정도로 수습될지는 미지수다. YS나 金.李 고문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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