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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미아리업주 '텍사스 대결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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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년 동안 영업을 방관하며 온갖 세금을 뜯어가더니 이제와서 우리를 개.돼지 취급하는데 그냥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모 결혼식장.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 의 업주 2백50여명이 모여 격한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업주들은 "엄동설한에 어디로 나앉으란 말이냐" "연좌농성이라도 벌이자" "한판 붙어보자" 는 등 험한 말들을 쏟아낸 뒤 강경대응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모임은 관할 성북구청이 한국전력과 수도사업소의 협조를 얻어 미아리 텍사스 지역에 단전.단수 조치를 취하기로 한데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업주들은 한전 측이 강제 단전을 강행할 경우에 대비해 1백여명으로 구성된 자체 '자경단' 을 결성하고 28일 밤부터 구역별로 배치하는 등 물리적 충돌까지도 불사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달 초 김강자(金康子) 서울 종암서장이 부임하면서 '미성년 매매춘' 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크게 위축됐던 업주들이 단전.단수 조치에 강력하게 맞서기로 함에 따라 미아리 텍사스가 '전운(戰雲)' 에 휩싸이고 있다.

성북구청은 지난 13일 미아리 텍사스촌 내 윤락업소 가운데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1백30여곳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를 한국전력 북부지점과 성북수도사업소에 의뢰했다.

주택.근린생활시설만 입주가 가능한 준주거지역에 접대부를 고용하는 무허가 유흥주점이 들어서 있다는 이유였다.

이어 한전측도 지난 20일 "건축법 제69조 제2항(행정관서 시정명령 불이행)을 위반했으므로 28일까지 유흥업을 그만두지 않으면 즉각 전기공급을 중단하고 10일 후 전기사용 계약까지 해지하겠다" 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 지역 자율정화위원회 김광일(金光日.45)운영위원장은 "고작 1주일 전에 한전 측으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며 "지금 나가라면 보증금 등 수억원의 재산을 포기하란 말이냐" 며 분통을 터뜨렸다.

업주들이 예상외로 강하게 반발하자 "여론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강경조치를 취했다" 던 성북구청 측도 대책회의를 갖는 등 무척 당황한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위법사항에 대한 조치를 관계 당국에 의뢰했을 뿐" 이라고 말했다.

한전과 수도사업소 관계자들은 "공적 기관으로서 명분을 등에 업은 구청 측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입장" 이라며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한편 종암경찰서는 성북구청과 한전으로 부터 단전.단수 계획을 통보받고 자경단 조직 등 업주들의 조직적 반발에 대비, 병력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를 둘러싸고 공권력과 윤락업주의 본격적인 '한판' 이 시작된 것이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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