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타는 '시민 불복종'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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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시민 불복종' 운동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시민단체의 총선 개입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을 넘어 낙선운동의 적정수준으로 논의가 옮겨 갈 정도로 급류를 타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경실련 등 5백 개에 가까운 시민단체가 후보 부적격자 명단 공개하고 앞으로 낙선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은 분명 현행 선거법에 위배 된다. '시민 불복종' 운동인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시민 불복종 운동의 역사는 짧지 않다. 불복종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이는 미국의 문필가 헨리 데이빗 소로(1817~1862). 소로는 여러 해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아 1846년 감옥에 수감된다.

이 세금이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부도덕한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는 재원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납세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공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세금은 납부했다.

소로는 당시 창간된 잡지 '미학' 에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이란 글을 발표했다. 그가 사망한 후 '시민 불복종' 이란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번역돼 나왔다.

시민 불복종은 혁명.전쟁과 달리 19세기에 등장한 저항운동으로 권력에 '진실' 을 말하겠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로의 사상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줘 그의 정치.사회 사상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또 20세기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간디는 th로의 책을 읽고 감동 받아 인도인의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다.

후에 이 운동은 영국의 인도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법을 자발적으로 위반한 인도인 10만 명이 체포됐다.

시민 불복종운동은 20세기 중.후반으로 접어들며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참정권을 보장받기 위해 선거방해운동을 벌이는 한편 여성노동자들은 태업을 했다.

이 가운데 팬 커스트 모녀는 감옥 들어가기 운동을 해 투옥되기도 했다. 1960~70년대 살바도르에서는 현행법을 위반하며 기독교단체.노동조합 등 다양한 세력이 연합해 인권운동을 벌였다.

80년대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세계의 반대운동은 시민 불복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84년 11월 미 남아공 대사관 앞에서 1년여 동안 계속된 시위는 하원의원.노동운동 지도자.종교단체 지도자 등이 체포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에서는 86년 농촌의 실상에 대한 TV의 왜곡보도에 분노한 전라북도 완주군의 한 농민에 의해 시작돼 4년 여에 걸쳐 국민의 절반 이상이 참가한 시청료 거부운동이 시민 불복종운동의 최초 사례다.

이 운동은 87년 11월 언론기본법의 폐지, 방송법 제정, 한국방송공사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번 시민단체의 총선개입은 한국사에 있어 두 번째의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 사례로 기록된다.

경실련.총선시민연대의 총선후보 부적격자 명단 공개에 이어 정치개혁 시민연대 등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서강대 다산관에서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가 '낙선운동, 왜 정당한가?' 를 주제로 연 긴급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학단협이 이번 운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취지다.

토론회에서 한국정치연구회 오현철(학단협 정책위원장)연구원은 "낙선운동은 선거법 58.59.87조를 의도적으로 위반한다는 점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 이라고 정의하고 "더 이상 합법적인 수단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형식적 한계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판명되었으므로 낙선운동을 금지한 선거법에 대한 불복종은 정당할 뿐 아니라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이라고 밝혔다.

또 박병섭 상지대(법학)교수는 "선거법 87조를 검토해보면 시민단체가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에 보장된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와 함께 한편에서는 다른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 함성득(행정학)교수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처럼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소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 "특히 현행법을 위반하고 운동에 나서는 것은 목적만 정당하면 과정은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로 받아들여져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또 연세대 문정인(정치학)교수는 "과거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시민사회가 억압된 것이 사실이고 선거법 87조도 그 연장선에 있지만 실정법을 지켜야 하는 것도 당위인 만큼 절차를 중요시 해야한다" 며 "시민단체가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몰라도 낙선운동을 벌이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 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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