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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기획] 정치 신인 사무실 간판에 이름도 못넣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치신인들에 대한 선거 규제의 벽은 의외로 높다.

21세기를 맞아 사회 곳곳의 규제덩어리들이 깨져나갔지만 현행 선거법은 신진들의 참여를 막는 거대한 19세기식 장벽이다.

◇ 선거규제 실태〓K씨(42)는 공학박사다.

박사지만 그는 유권자들과의 접촉을 위해 20세 아래의 방송대학 2학년생들과 매주 한번씩 스터디그룹을 함께 한다.

그는 또 매달 두번 지역구 구청에서 열리는 단축 마라톤대회에 나가 10㎞를 뛴다.

이전엔 한번도 나간 적이 없던 민방위교육도 받는다.

현행 선거법상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서울 강서갑 공천신청자인 새천년민주당의 임삼진(林三鎭)씨는 사무실을 찾아온 강서구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사무실에 쌓아두면 배포행위에 해당된다.

당장 치우라. " 선관위 직원이 林씨가 사무실에 비치해놓은 인터뷰기사 복사물을 문제삼은 것. "돌린 것도 아니고 내 사무실에 쌓아둔 것이 무슨 문제냐" 며 선관위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울 영등포갑의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 권기균(權奇鈞)씨는 지난 연말 지인(知人) 1백여명에게 "영등포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성명과 관계 등을 적어 보내달라" 는 편지와 자신을 출마후보자로 포함시킨 신문기사 하나를 우편으로 부쳤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것조차 신참에겐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회의원에게도 이 조항은 적용된다.

그러나 의원들은 의정보고서에 약력이나 자신의 이름 석자가 실린 기사를 빼곡히 기재할 수 있어 비교가 안된다.

이뿐이 아니다.

새천년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공천신청자 우상호(禹相虎)씨는 한때 사무실에 '우상호 빵집' 이란 간판을 내걸 생각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이름을 알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간판에도 자기 이름을 넣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행정기관의 차별을 호소하는 이도 많다.

노원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L씨는 "보름이 지나도록 노원구의 인구 등 지역통계를 내주지 않던 구청 공무원이 민주당측 인사에겐 1시간만에 디스켓에 담아주더라" 고 말했다.

◇ 외국 사례〓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사실상 선거운동기간이 따로 없다.

물론 현역의원과 신진을 차별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프랑스의 경우 법정 선거운동기간이 있지만(의회의원선거의 경우 투표일 전 20일부터) 우리처럼 사전선거운동을 막기 위한 조항은 아니다.

미국은 아예 선거비용에 대한 제한도 풀었다.

197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선거비용 상한을 규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 선관위.정치권 입장〓현행 선거법이 현역의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선관위도 인정한다.

그래서 선관위는 현역의원들의 유력한 사전선거운동으로 악용되고 있는 의정보고회를 대폭 줄이려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선거법 협상에서 정치개혁특위 위원들은 의정활동을 지역구민에게 보고하는 것은 의원들의 의무라며 이를 묵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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