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일본, 말은 한국어… 이색 영화 국내 상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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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난강(왼쪽)이 주연을 맡아 한국어로 연기한 ‘호텔 비너스’의 한 장면.

이상한 영화 한편이 10일 개봉한다. 일본 자본으로 일본 감독이 만들고 일본 톱스타가 주연을 맡은 일본영화인데도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제작한 '호텔 비너스'다.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 최고의 그룹으로 군림했던 스마프(SMAP) 출신의 구사나기 쓰요시(초난강)와 '링'시리즈로 유명한 나카타니 미키 등 톱스타들이 출연했는데도 올 초 일본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그러나 자국에서 자국영화를 자막을 통해 봐야 한다는 기묘함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범상치 않은 영화가 만들어진데는 구사나기 쓰요시의 역할이 컸다. 한일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몇년 전부터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후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싱글 앨범을 발표했고, 한국어 교본까지 출판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방일한 노무현 대통령을 일본 문화인 대표 자격으로 만난 자리에서 "한국어로 된 영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대사만 특이한 게 아니다. 형식과 내용 모두가 낯설다. 무대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호텔 비너스'. 거리에 간혹 러시아어 간판은 눈에 띄지만 이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커피 밖에 시킬 수 없는 이 호텔의 카페. 이곳을 찾아가 "비너스의 뒷모습을 보여주세요"라고 속삭이면, 그 사람은 호텔 비너스에 장기 투숙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여기서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그래서 서로를 부를 때도 별명을 쓴다.

여장 남자인 주인 '비너스'와 웨이터 '초난', 어릴 때 이 카페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뒤 킬러가 되려 하는 '보이', 꽃가게 점원 '소다', 수술 실패 후 알콜에 의지해 살아가는 '닥터'와 그의 아내 '와이프'가 모두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막노동을 하는 '가이'와 어린 소녀 '사이'가 합류하면서 숙박객 사이에 묘한 긴장이 조성되고, 종국엔 모두의 상처가 치유된다.

감독은 SMAP의 뮤직비디오와 CF 등을 만들었던 다카하타 히테타. 올해 모스크바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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