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영도 '눈길에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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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더부러 거닐던 이 길 한 점 티도 가셔지고

밝히는 그리움 투명한 언저리를

산마을 그 주막 등불이 너를 겹쳐 어린다.

한 낱 모래알에도 삼천대계가 깃드리는데

너무 가득하여 차라리 빈 가슴

시원의 새벽에 선뜻 고요도 절(絶)한 눈발….

- 이영도(李永道.1916~76) '눈길에서' 중

조선 여인은 사랑을 어떻게 쓰는가. 이영도의 가슴에 닿으면 삼라만상이 그리움으로 물든다.

이호우(李鎬雨)의 누이동생으로 한동안 끊겼던 여류시조의 맥을 이어 이 나라 긴 시조역사에 별자리 하나를 이룩했으나 오빠를 앞질러 떠나고 말았다.

그가 남기고 간 '정운(丁芸)시조 문학상' 이 뒤를 잇는 시인들의 길을 비춰주고 있거니와 차가운 듯 하면서도 올올이 타고 드는 사랑의 숨결이 안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근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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