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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신춘중앙문예 평론부문] 성 정치/욕망의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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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70년대 최인호.황석영 소설에 나타나는 성과 신체의 의미

<내용요약>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받들이고 있는 '성(sexuality)' 은 '자연적' 인 현상이 아니며 사회적.역사적 맥락 하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영향하에 있는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성에 유토피아의 꿈을 투영시켰지만 사실상 성은 회복되어야 할 유토피아의 꿈이 숨어 있는 곳이 아니라, 권력이 작용하는 분할과 통제의 지점에 불과하다.

성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성담론의 폭발' 이라고도 할 만한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늘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70년대에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따라서 70년대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눈여겨볼 만한 '성의 전사(前史)' 가 되는 셈이다.

성담론이 폭발한 70년대에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성을 소재로 한 소설이 쓰여졌다. 그 중에서 특히 최인호와 황석영은 유독 상반되는 입장으로 평가되는 작가들이다. 성을 이야깃거리로 삼았다는 점 외에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공통점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을 모더니즘/리얼리즘 식의 이분법으로 도식화해서 구별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리얼리스트' 로서의 황석영 혹은 '모더니스트' 로서의 최인호가 어떤 방식으로 성과 육체의 문제를 소설화했는가라고 묻기보다는, '황석영과 최인호의 텍스트에서 성과 육체는 어떤 의미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어떤 방식으로 권력에 대해 저항의 몸짓을 취하고 있는가' 라는 방식으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로 돌아가, 텍스트를 무한한 의미생산의 가능성 위에 풀어놓는 일이다.

최인호는 '타인의 방' 에서 통제되는 신체, 규율되는 욕망의 문제를 도시, 특히 아파트의 '방' 이라는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도시(권력, 근대)의 시선 속에서 철저히 통제되고 분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탐색의 맞은편에는 현실에 대한 절망적 인식이 담겨 있다. 이것은 결국 '그' 가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별들의 고향' 은 그러한 작가의 허무주의적인 세계인식이 반영된 텍스트이다.

'별들의 고향' 에서 작중인물들은 성관계를 통해 충만감이나 합일을 느끼기보다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존재' 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고독' 의 문제는 선험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무엇이' 인간을 고독하게 하는가를 묻는 대신, 인간을 '본래' 고독한 존재로 규정짓고 인간이 '도시' 에 '머물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과 운명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편 황석영은 '장사의 꿈' 에서 상품화된 육체의 문제를 통해 모든 것이 소비의 논리에 따라 조직되는 사회적 관계를 비판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텍스트에서 -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 에서 그랬던 것처럼 -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도시' 의 맞은편에 '고향' 을 설정함으로써 막연한 이상향에의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몰개월의 새' 에서 황석영은 이러한 '도시 : 고향' 의 소박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왜곡된 인간관계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적인' 영역에서 만들어 가는 대등한 관계, 친밀한 관계를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쩌면 하나의 '이상' 일 수 있다. 작중인물들(미자와 한상병)간의 관계를 인간관계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와 나' 의 민주적 관계를 통해 왜곡된 인간관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인간이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최인호와 황석영은 그들의 소설에서 70년대의 성 문제를, 당시의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하나의 은유로 풀어 나간다. 그들은 모두 '도시' 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권력' 이 어떻게 인간의 육체를 규율하고,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가를 드러내고자 했다.

최인호와 황석영은 그들의 텍스트에서 성이 결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역이 아니라, 통제와 규율로 얽힌 복잡한 지점임을 보여 주었다. 70년대의 사회적 관계를 '성' 을 통해 묘사한 최인호와 황석영의 텍스트를 '다시읽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신체.욕망의 문제와 관련된 '여전히' 유효한 물음들을 생체통제권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원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http://www.joins.co.kr/cgi-bin/sl.cgi?seriescode=148&kind=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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