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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분할매각 무산·한중 입찰 표류…발묶인 공기업 민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공기업 민영화가 차질을 빚고 있다.

한전 분할매각 관련 법안 통과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무산됐고, 한국중공업 민영화도 입찰방식조차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처럼 올 연말까지로 예정됐던 핵심 공기업 민영화 일정이 잇따라 차질을 빚게 됨에 따라 자칫 민영화의 큰 구도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한국전력〓국내 최대의 공기업인 한국전력을 자회사로 분할.매각키 위한 관련 법안이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발전부문 자회사 1개의 매각에 나서 오는 2003년까지 민영화를 완료하려던 당초 한전 분할 계획의 차질은 불가피해졌다.

산자부 관계자는 "한전의 차입금이 최근 4년 사이 3배 이상 늘어난 24조원에 달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초래해온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바꿔야 한다" 며 조속한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안 통과가 무산됨에 따라 법안 통과를 전제로 지난 정부조직개편 때 산자부 내에 신설한 전력산업 구조개편단은 개점 휴업이 불가피해 졌고, 내년 중에 설치키로 한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는 공중에 떴다.

또 이미 외국투자자들에게 민영화를 전제로 기존 차입금에 대한 디폴트(채무이행요구)에 대한 양해도 얻어 놓은 상태여서 민영화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경우 대외 신인도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한편 한국노총과 한전 노조 등은 "한전 분할 매각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될 우려가 높은 데다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생산설비의 해외매각 등으로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 며 법안 통과시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 다른 공기업도 마찬가지〓연말까지 정부지분 51%를 경쟁입찰을 통해 국내외 기업에 매각키로 했던 한국중공업도 아직까지 입찰방식을 결정하지 못해 내년 이후로 입찰이 연기될 전망이다.

산자부는 한국중공업의 기술제휴선인 GE와 ABB에 일정 지분을 배정한 뒤 나머지 지분을 공개 입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이에 따른 지분배정 비율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다.

발전소 1호 매각으로 관심을 끌었던 부천.안양 열병합발전소 공개 입찰도 매각조건이 맞지 않아 유찰됐으며 지난 7일 실시됐던 포항제철의 지분 매각도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실패했다.

예상 낙찰가격이 7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노른자위 자산인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매각은 SK.엔론 등 3개 응찰업체가 제시한 응찰가가 낮아 낙찰업체가 선정되지 않았다고 산자부가 14일 밝혔다.

지난 7일 실시된 포철의 산업은행 잔여지분(12.84%) 매각도 최소 매각단위 지분이 3%인 블록세일방식이어서 5천억원 이상의 자금동원 부담으로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결국 매각에 실패했다.

◇ 향후 대책은 있나〓박중구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은 "국익에 손해가 가지 않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의 시기.방법을 조절 중" 이라며 "내부 경쟁체제 도입 등 민영화 일정 무산에 따른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의 김기식 정책실장은 "민영화 지상론과 무조건 반대식의 논쟁을 지양, 경영의 비효율성을 없애고 공적 서비스를 높이는 차원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필상 고려대교수도 "이해집단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낙하산 인사.정치자금 조달 등 기존 경영방식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전문가와 여론의 진단과정을 거쳐 개혁 청사진을 다시 제시해야 할 것" 이라고 주문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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