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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개고기·사교육·집창촌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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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러나 셋 다 이용자가 대놓고 동네방네 자랑하지는 못 한다. 보신탕을 즐기는 이들이 특히 여름철이 되면 개고기의 신비한(?) 효능부터 어느 집이 요리를 잘하는지 정보를 교환하고, “역시 껍질이 최고”라는 식으로 자랑하는 것은 나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끼리끼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여름에 보신탕집 가려고 직장 동료 몇몇을 규합할 때도 대개는 은근하고 수상쩍은 눈빛으로 “개 하세요?”라고 속삭이듯 의사타진한다. 복날 유명 보신탕집 앞에 줄 선 선남선녀들은 자기 일행끼리나 얘기를 나누지 다른 손님들과는 왠지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다. 사교육도 정규 사설학원 정도는 굳이 자랑할 축에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짜 용하다는 과외선생을 확보한 엄마들은 쉬쉬 입단속하며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런 과외그룹에는 내 아이를 끼워 넣기도 힘들단다.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지 벌써 5년이 지난 마당이니 집창촌 드나든 일을 자랑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군대 가기 전날 밤의 치기를 떠들고 다니는 바보가 있다면 모를까. 보신탕·사교육·집창촌 모두 쉬쉬하며 유통되는 구석이 있다 보니 이들을 대하는 우리 태도도 이중적일 때가 많다. 겉과 속이 어긋나는 것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풍선 효과’다. 법으로 틀어막고 ‘엄단’과 ‘척결’을 외쳐도 다른 쪽이 삐죽 불거져 나온다. 개고기는 축산물가공처리법상의 ‘가축’이 아니다. 1975년 가축에 포함시켰다가 국내외 비난이 잇따르자 78년에 도로 제외했다. 그래서 비위생적으로 처리돼도 어쩌지 못한다. 서울시가 84년 고시를 통해 개고기 판매를 금지하고 88올림픽 때 대대적으로 단속했지만 풍선 효과를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철탕’ ‘영양탕’ 등 이름만 다채로워졌다. 최근 골수 보신탕 애호가들은 여름철 삼복(三伏)에 ‘8·15 광복’과 ‘9·28 서울수복’을 더해 ‘5복’이라 부르며 더 많이 즐긴다고 한다.

사교육의 풍선 효과는 입증된 지 오래다. 전두환 정권의 과외 금지조치 덕분에 80년대 학번 대학생들은 위험수당이 붙어 유례없는 고액과외 혜택을 누리지 않았던가. 어제 헌법재판소가 학원의 심야교습을 금지하는 조례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나는 풍선 한쪽을 또 한번 누르는 정도의 결정에 불과한 듯해 걱정이다.

집창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풍선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풍선의 전체 크기는 작아졌다’라고 강변하지만 과연 그럴까. 며칠 전에도 서울에서 장안동 집창촌을 떠난 이들이 ‘기원’ 간판을 내걸고 성매매 영업을 하다 걸려들었다. 관련 업소는 ‘인형방’ ‘X딸방’ 하는 식으로 업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미성년자 성 매수나 납치·유인, 질병 등 이 방면의 진짜 ‘독소’들이 정작 우리가 철퇴를 내려야 할 대상이 아닐까.

경직된 원리주의, 엄숙주의가 무리를 부르고 이중성을 낳는다. 이런 점을 누구나 느끼지만 대놓고 외치기엔 뭔가 껄끄럽다. 명분이 산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틈새를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파고든다. “이 참에 씨를 말리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고기든 사교육이든 존폐(存廢)가 아닌 ‘관리’가 핵심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현실적인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의 외국어고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 결정자의 확신에 찬 발언에 속아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