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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간담회 발언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필리핀을 방문 중인 김대중 대통령이 30일로 잡힌 수행기자 간담회를 29일 취소했다. 그 이유는 "일정이 빠듯하다" 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정치상황이 헝클어져 있어 기자간담회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생략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대신 金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마닐라 호텔에서 동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정치상황을 언급했다.

30여분간의 긴 연설에서 3분 정도의 짧은 언급이었지만 여운은 길고 깊었다. 金대통령 스스로 '대통령 자책론' 을 언급하고 정국 정상화의 의지를 다짐했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으로서 바르게 살고 열심히 하겠다" "야당총재가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존중하고 있다" 는 金대통령의 발언에 필리핀에 거주하는 2백50여 동포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책임' 의 구체적인 범위.대상은 지칭하지 않아 이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었다.

옷 로비 사건 수사의 은폐를 지적한 것인지를 놓고 청와대 수행원들 사이에도 견해가 엇갈렸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연설의 앞뒤를 볼 때 여야간 대화부재로 인한 정국 전반의 난조를 얘기한 것" 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의 정국상황의 책임소재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일 수 있다" 고 말했다.

어찌됐든 金대통령은 이미 출국 직전 사직동팀 문건의 유출과 관련,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관계자들의 사법처리가 예견되는 상황이다.

金대통령은 그 선에서 옷 로비 사건 시비를 마무리짓고 여야 대화의 물꼬를 틈으로써 정국을 수습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란 게 청와대 참모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金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사직동팀 문건유출에 대한 수사도 속전속결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 한 비서관은 전망했다.

때문에 기자회견도 취소하고, 30일 오후의 귀국기자회견(서울공항)도 '귀국보고' 로 대체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책임소재가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고도 여론에 대한 야속함을 은연 중 표출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면서 나라가 썩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이중성이다" 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선 "金대통령은 약간의 울분을 토하는 듯했다" 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金대통령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울분을 삭였다. 金대통령은 동포들을 상대로 "여러분들이 김대중과 같은 시대를 살고 또 필리핀에서 만난 일이 두고두고 자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고 다짐했다.

"대통령으로서 바르게 살고 열심히 하겠다" 는 말을 두번이나 되풀이했다.

마닐라〓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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