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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루게릭 투병 7년, 그래도 놓을 수 없는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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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눈으로 희망을 쓰다
이규연·박승일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230쪽, 1만1000원

처음엔 농구공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다음엔 휠체어로, 다음엔 키보드로, 그 다음엔 안구 마우스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그는 그것조차 쓸 수가 없다. 그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근육인 눈꺼풀마저 굳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까닭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다.

공동 저자인 박승일은 2002년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31세)’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화려하게 국내 무대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잔인했다. 평소 가볍게 들던 50㎏ 바벨을 가슴 위에 떨어뜨렸을 때도 그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여신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6개월 뒤 그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의 확진 판정을 받는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병,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주인공인 미국 사회학자 모리스 슈워츠 교수의 병, 최근 개봉된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김명민의 병, 무엇보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루게릭병이었다.

병석에 누워 간병인이 든 글자판을 보며 눈동자로 의사를 전달하는 박승일씨. 어머니와 간병인만 간신히 알아챈다고 한다. [박종근 기자]

죽음을 앞둔 병자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게 신의 섭리다. 고통의 극한상황이 오기 전 의식을 잃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병자는 고통을 덜 느끼며 죽음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들 앞에서 신은 마지막 자비를 잊고 만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흐려지지 않는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서서히 호흡이 어려워지고 심장이 딱딱해져 가는 느낌을 상상할 수 있겠나.

루게릭병은 환자들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하루도 생명을 이어갈 수 없기에 “가족들의 피를 말려 같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물귀신”이 바로 루게릭병이다.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은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굳어가는 근육을 생각하면 원망만 늘어놓고 있을 틈이 없는 까닭이다. 박승일도 그렇다.

대신 꿈을 꾼다. ‘세계 최초로 루게릭병을 이겨낸 사람’이 그것이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을 그 대열로 이끌기 위해 루게릭병 전문요양소를 설립할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의 꿈이 이뤄지도록 돕기 위해 중앙일보 이규연 기자가 나섰다. 이 책은 박승일과 이규연이 2005년부터 4년간 주고받은 e-메일 50통을 토대로 쓰여진 것이다. 그들이 엮어낸 ‘눈으로 쓴 희망’ 기록들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숙연한 감동과 함께 불행하게 여겨졌던 자신의 현실이 환희에 빛나는 행복감을 보너스로 얻게 될 것이다. 대신 그만큼 빚을 지는 것이다. 나하고 다른, 정말 상상조차 못했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을 돌아봐야 할 의무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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