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재참사] 생존자 현장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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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상윤아,빨리 나와. 위험해. " "지금은 못나가. " "무슨 소리야. 잔말 말고 빨리 나와. "

불과 10여초간 이어졌던 통화가 2층 라이브Ⅱ 호프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먼저 일어선 崔선택(16.인천시 광성고1)군이 건물 안에 남아있던 같은 학교 친구 吳상윤(16)군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였다.

당황해했던 吳군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짧았던 통화 시간. 이는 얼마나 불길이 빠르게 번졌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崔군은 이날 같은 학교 친구 金주현(16)군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10여명의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오후 6시쯤 이곳에 도착했으나 1시간도 채 안돼 술집 주인이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보이냐. 우리도 계속 장사해야 하니까 웬만하면 자리를 비워주라" 고 말할 정도로 실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친구 3명과 함께 먼저 일어난 崔군은 1층 문을 나서자마자 등쪽이 후끈해오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검은 연기가 2층으로 치솟고 있었고 30초쯤 후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졌다.

당황한 崔군은 황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때쯤 호프집 안에는 權유미(16)양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徐민정(16.여)양 등 8명의 인천여자정보산업고 1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출입문 바닥에서 회색 연기가 새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호프집 주인과 종업원들이 "괜찮으니 걱정말라" 고 말한 데다 생일파티 모임이 서로를 축하해주는 등 한창 분위기가 띄워져 안심하고 있던 때였다.

"연기가 나기 시작한 지 불과 몇분 후에 출입문으로 불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는 徐양은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다 보니 전기가 꺼지고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며 소름끼치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눈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인하대병원 12층에서 치료 중인 이 호프집 주방장 朴주관(29)씨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불길과 연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며 "급히 가스불을 끄고 환풍기를 뜯어내 호흡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어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주방 바닥에 기절했다" 고 말했다.

순간의 차이로 목숨을 건진 뒤 중상을 입은 친구들을 위문하기 위해 31일 인하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崔군은 "마신 술만 해도 맥주 3천cc, 소주 6병 정도여서 안에 있던 아이들이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 이라며 "그때 친구들과 함께 같이 나왔어야 하는데 너무나 후회된다" 며 허망한 표정이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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