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박한(?) 마이너스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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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십수 년째 결제대금 연체 없이 하나카드를 써 온 회사원 황모(49)씨는 지난주 카드 사용을 정지당했다. 급히 알아보니 “다른 은행에서 대출 연체자라는 통보가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출 이자를 안 낸 적이 없는 그는 당황했다. 문제가 된 건 국민은행 마이너스 통장이었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하는 만기 연장을 위한 서류 처리를 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며 “이자를 못 낸 것도 아니고 서류 처리를 못 한 것뿐인데 연체로 분류해 신용도에 흠집을 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2000만원, 금리는 초우량 고객 수준인 연 5%대였다. 그는 국민은행에 3000만원 가까운 예금이 있다.

마이너스 통장, 직장인들에겐 쌈지 같은 존재다. 필요할 때 돈을 빼 쓸 수 있어서다. 통장 이용자들은 다른 대출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금리를 낸다. 편리한 만큼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하지만 은행의 대출 관리가 강화되면서 고객 관리가 너무 야박해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만기 연장 안 하면 연체=마이너스 통장은 미리 정한 한도 내에서 횟수에 관계없이 돈을 빼 쓸 수 있는 상품이지만, 1년에 한 번씩은 만기 연장을 해야 한다. 만기 연장을 안 하면 연체 이자를 내야 하고, 연체자로 분류돼 신용등급이 깎인다. 보통 만기는 두 달 전에 문자 메시지 등으로 알려준다. 하지만 연장을 제때 안 할 경우 연체자로 분류되는 것까지 상세하게 안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만기를 연장할 때 직장·급여 변동이나 신용도 변화에 따라 대출 한도와 금리가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직장을 옮겼거나 다른 대출이 늘었을 때는 반드시 금리 변동을 확인해야 나중에 이자가 많이 나와 당황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거꾸로 소득이 늘었거나 신용등급이 좋아졌을 때는 만기 전이라도 금리 조정을 은행에 요구할 수 있다.

신용등급 상향은 은행이 따로 통보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챙겨야만 이자를 아낄 수 있다. 다만 첫 대출을 한 후 6개월은 지나야 금리 조정이 가능하다.

◆마이너스 통장도 빚=일반적인 대출 절차를 밟진 않지만 마이너스 통장도 빚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다른 대출을 받을 때 마이너스 통장 한도만큼 대출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추가 대출 가능액이 줄어든다. 예컨대 1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에서 100만원이 마이너스인 상태라도, 100만원이 아닌 1000만원의 대출이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마이너스 대출이 전혀 없어도 한도만큼 대출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자를 덜 내려면 통장에 ‘플러스’로 표기된 날이 많을수록 좋다. 마이너스 통장은 매일 이자를 계산한 후 한 달에 한 번씩 이를 합산하기 때문이다. 각종 공과금 결제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하면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국민은행 개인여신부 고광래 팀장은 “마이너스 통장은 일시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금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면 일반 신용 대출을 받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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