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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 2. 소환직전 막후 외압·굴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앙일보가 세무조사를 당한다고 그런 식으로 하느냐. 나중에 (세무조사 결과를)발표했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이 13일자에 실린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인터뷰기사를 보고 본지 기자에게 던진 한마디다.

金전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으로 국내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세무조사에 대한 중앙일보의 앙갚음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실 金전대통령 인터뷰는 기사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활자화했을 뿐이다. 金전대통령은 당시 관심을 끌던 신당 창당설과 관련해 "신당을 만들 생각이 없다" 고 밝히는가 하면 집권기간중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뻔했었다는 비화 등을 처음으로 소상히 공개했다.

특히 기사중에는 金전대통령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증거 공개를)필요하면 할 수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게 낫지" 라고 말한 부분도 포함됐다.

기사가 나간 후 청와대 관계자를 비롯해 여러 곳으로부터 항의.압력 전화가 쏟아졌다. "중앙일보나 홍석현 사장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 이라며 경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같이 심상찮은 권력핵심의 반응을 접한 고위 경영진들이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진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경영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은 당시 진행되던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를 의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바심은 바로 다음날의 지면에 반영됐다. 14일자 중앙일보 시사만평에서 김상택 화백은 金전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金전대통령이 전날 인터뷰에서 자신은 "92년 대선 당시 패배자였던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을 조사시키지 않았다" 고 말한 부분과 김대중 정부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것을 대비시킨 내용이었다.

여권핵심의 거친 숨결을 여러 경로로 확인해온 편집간부진은 숙의를 거듭한 끝에 만평의 교체를 결정했다. 급히 새로 그려진 만평은 김옥두(金玉斗)총재비서실장이 실세로 등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의 것에 비해 풍자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인 7월 4일 박지원 장관은 洪사장에게 "보광 세무조사건은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조용하게 처리하도록 내가 책임을 지겠다" 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세무조사가 8월 중순부터 '조세범칙조사' (검찰고발을 위한 조사)로 강화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洪사장 검찰고발과 구속예정' 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9월 17일 국세청이 이례적으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기자회견까지 자청, 소문대로 洪사장에 대한 검찰고발 방침을 밝히자 경영진과 편집간부들은 더욱 긴장했다.

洪사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또한번 부끄러운 굴절을 했었다.

9월 22일자에 관례대로 창간특집 여론조사결과를 3개 면에 걸쳐 크게 실었다.

하지만 밤사이에 3개 면의 제목이 모두 바뀐 것이다. 1면의 제목은 '1+1+α 신당(新黨)부정적, 60.6%' 에서 'IMF극복 시간 더 걸린다' 로, 14면 제목은 '신당은 총선 위한 일회용, 65.4%' 에서 '신당창당 국민공감 아직 못얻어' 로, 15면 제목은 'IMF극복 아직 못했다, 81.8%' 에서 '지난해보다 재산 줄었다, 53.8%' 로 각각 바뀌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가 추진 중인 신당에 대해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부각시킨 제목이 사라졌다. 정권이 자랑해온 IMF극복 노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드러난 제목도 사라졌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여권핵심의 강경분위기 등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일보 내부는 심각한 진통을 겪었다. 당장 대다수의 편집국 기자들이 최고간부들의 이같은 결정에 강력히 항의하고, 대자보를 내걸기도 했다.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면제작과 관련한 압력은 계속됐다. 8월 12일에는 박지원 장관과 박준영 공보수석이 각각 중앙일보 편집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김현철의 사면을 두고 논란이 많다. 잔여형 집행면제를 해주기로 결정하고 곧 발표하는데 이때 김대중 대통령이 고뇌 끝에 화해와 용서의 정신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달라" 는 요구였다.

당시 이같은 주문은 받아들여졌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와 편집국 간부간에 심야 고성이 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5월 4일 밤 박준영 당시 청와대비서관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음 날짜에 실린 김상택 화백의 만평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만평은 4일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여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것을 金전대통령이 지켜보면서 "날 닮으면 망해" 라고 경고하는 장면을 그린 내용이다.

朴비서관은 통화에서 "중앙이 계속 이렇게 나오냐" 며 "비판적인 기사만 싣는게 언론의 태도냐" 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편집간부도 맞받아 언성이 높아졌고 밤 근무 중이던 많은 편집국 기자들이 이를 지켜봐야 했다.

외압은 청와대로부터만 온 것은 아니다. 7월 2일자 27면(사회면)에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의 참사와 관련, 사고 당시 유치원 원장의 남편인 국정원 직원이 인솔교사들에게 술 파티를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1일 밤 미리 인쇄된 가판 기사내용을 파악한 국정원 관계자가 편집국을 찾아와 '기사삭제' 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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