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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포철 사례]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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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세청이 특정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현대와 포항제철 등 단 두번 뿐이었다.

이 두 건은 모두 정치적 배경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혹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91년10월2일, 서울수송동 국세청 회의실. 당시 서영택 (徐榮澤) 국세청장은 국회 재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했다.

"현대그룹의 계열기업을 대상으로 정주영 (鄭周永) 일가에 대한 주식이동조사에 착수해 현재 진행중" 이라고. 요컨대 鄭씨 일가의 변칙적인 사전상속, 또는 증여혐의가 드러나 조사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徐장관의 이 발언은 바로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문제의 핵심은 이랬다.

국세청은 주요 그룹에 대한 주식이동 내용을 전산화해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현대 대주주의 주식이동이 빈번했고 이 과정에서 탈세혐의가 포착돼 조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세청 관계자는 "91년2월부터 8월말까지 鄭회장의 현대 계열사주식 매각과 관련한 증권당국의 자료를 넘겨받고 서면분석을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鄭회장의 탈세 사실을 들춰내고 조사를 확대한 것일 뿐" 이라면서 정치적 해석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현대측은 법의 테두리내에서 주식이동이 이뤄졌다고 맞섰고 세간에는 "鄭회장의 현대가 盧정권의 미움을 샀고, 따라서 현대를 주시해오던 국세청이 탈세혐의를 잡고 '혼내주기' 차원에서 철저하게 파헤친다" 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盧정권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현대의 목을 조여갔고, 鄭씨는 이에 맞서 "현대를 부도낼테면 내보라" 며 전면승부를 불사했다.

결국 국세청은 91년11월초 鄭회장 일가의 변칙증여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인 1천3백6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었다.

그 뒤 鄭회장은 "돈이 없어서 세금을 못내겠다" 고 버티다 결국 납부했으며, 최고 권력층과의 불화가 심화돼 지난 92년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현대는 이후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고 우여곡절끝에 납부세액중 1천2백여억원을 되돌려 받았다.

한편 국세청은 93년 2월 포항제철에 대해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고 그해 6월 포철등 법인과 협력회사에 대해 7백30억원, 박태준명예회장 일가에 63억원 등 모두 7백93억원의 탈루세액을 추징하고 朴명예회장은 수뢰와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발조치하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YS의 대통령 당선 직후 이뤄진 포철에 대한 세무조사는 朴명예회장이 대선전 YS와 갈등을 빚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실제로 조사착수 당시 국세청은 '정기법인세 조사' 라고 했지만 개인계좌추적 및 가택수사등 세무사찰에서나 가능한 수단이 총동원됨으로써 '정치적 보복' 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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