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청 불안, 확실한 대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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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심하고 통화하세요. "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감청 (監聽) 이 크게 늘고 있음이 확인돼 통신비밀 침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정부가 관계장관 담화까지 발표하고 신문에 실은 광고 내용이다.

당시 정치권도 여야 구분없이 기본권 침해가능성을 걱정하며 영장 없이 가능한 긴급감청 허용시간을 줄이고 감청대상 범죄도 축소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개정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고, 정부의 장담은 구두선 (口頭禪)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 정부가 최근 수사기관의 통화내역 조회건수 급증과 편법조회 등이 부각되고 불법 감청 및 도청 (盜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어제 정보통신부 차관 기자회견을 통해 또 다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이날 통화내역 조회건수가 늘기는 했으나 통화내용에 대한 감청은 크게 줄었다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발표한 감청실태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정말 국민의 통신비밀 보호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감청남용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면서도 경찰 등 수사기관이 올해 들어 1백75대나 되는 감청장비를 새로 들여놓은 사실이 국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감청이 줄고 있다면 왜 기존 장비의 26%나 되는 감청장비가 추가로 필요한 것인지 묻고싶다.

일각의 주장대로 수사.정보기관이 합법적인 범죄혐의자 감청외에 정.관.재.언론계 인사에 대한 도청을 해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대부분 근거자료가 남는 감청과는 달리 불법 도청은 정부기관이 부인하면 그만 아닌가.

정부가 정말 국민의 통신비밀 보호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이미 강조한 대로 이번 기회에 감청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률의 정비와 함께 확실한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우선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감청이 남발되고 수사기관 편의 우선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청대상 범죄를 대폭 축소하고, 영장청구때 소명자료를 첨부토록 하며, 영장 없는 긴급감청은 사후에 반드시 영장을 제출토록 하며, 법절차를 지켜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통신업체에 대한 감독 강화도 시급하다.

수사.정보기관마다 수십 내지 수백대의 감청장비를 갖춘 현실에서 말 한마디로 전화선을 연결해주면 불법감청뿐 아니라 불법 사찰 등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도청을 자행하는 사설업체의 불법행위도 꾸준한 단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다는 종합대책에는 최소한 이런 내용들이 포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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