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사회발전 가로막는 이중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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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3의 길'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석학 앤서니 기든스는 복지국가가 직면한 딜레마를 세계화.개인주의.좌우갈등.정치집단.생태문제로 정리하면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제3의 길' 을 탈산업사회가 추구해야 할 총체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의 좋은 비유가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마차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이것은 균형을 필요로 하는 사물의 이치며 기든스 주장의 핵심도 균형이라 할 수 있다.

균형이 깨질 때 사회의 건강한 발전은 위협받는다.

그러나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의 문제는 지극히 원시적인 수준이다.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이러한 현상을 서구의 탈근대적 딜레마와 구별되는 전근대적 이중구조의 관점에서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먼저, 우리 사회의 이중구조는 의식과 실천의 괴리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가치의 부재 (不在) 나 천박한 의식구조 위에서 그나마의 의식마저 실천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은 사회적 무책임과 수수방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이라는 반사회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의식이 실천으로 연결되는 순기능적 발전구조는 우리 사회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의식이 실천과 분리되는 상황에서 공론 (空論) 이 번성하고 맹목적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도덕과 현실의 괴리는 그 연장선상에서 나타나는 이중구조다.

그것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는 만연된 부패다.

우리 사회에서 부패는 특정분야,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온 사회에 창궐한 전염병과 같은 것이어서 사회를 뿌리 째 좀먹고 있다.

경제계의 관행인 리베이트와 블랙 커미션, 무한대의 접대문화는 부패의 진원지다.

경제계의 부패와 행정만능주의는 정경유착으로 발전한다.

경문大와 중부大 등에서 나타난 교육계 비리는 부패사슬의 말초신경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부패척결은 개혁의 첫번째 과제이자 마지막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중구조는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다.

근대 1백년을 거쳐 형성된 이 뿌리깊은 징후를 '한국병' 이라 한다면 정치만이 최종적으로 치유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듯 한국병을 앓고 있는 사회가 의사인 정치를 심각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썩은 사회가 더욱 썩은 정치를 부정하는 부패와 불신의 악순환 고리가 또 하나의 이중구조로 작동하는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후진적인 정치행태, 몰이념적인 지역주의, 배타적인 패거리정치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고 소박한 정치부재의 수준을 넘어 사회에 대한 '반역과 범죄의 정치' 로 타락하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이러한 이중구조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실현된 것이다.

이 저항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나 사회적 작동원리의 교체라는 이름으로 표출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권교체 후 과거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개혁과정에서 우리는 또다른 이중구조로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의 공약과 정부의 정책집행 사이에 존재하는 현저한 간극이라는 이중구조가 그것이다.

개혁은 정책과 인물과 조직에 의해서만 담보된다.

정책은 개혁방향을 제시하고, 인물은 개혁정책을 실천하며, 조직은 실천을 집단적으로 보장한다.

그중 하나만 빠져도 개혁은 실패한다.

그런데 김대중 (金大中) 정부 아래서 정책은 있되 인물과 조직이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그 이후 일련의 개혁약속이 유보 혹은 변질되는 배경에는 반개혁 세력의 저항 못지 않게 인물과 조직의 공백이 있다.

여당과 청와대, 행정부 어디에서도 대통령의 분신을 발견하기 어렵다.

개혁은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역사적 장정 (長征) 이자 총체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더불어 역사 앞에 당당하게 선 개혁주체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정부와 더불어 장정에 선 '국민' 을 발견하기 어렵다.

개혁의 깃발이 희미해지고 개혁이 관료행정으로 변질되면서 국민은 소외되고 있다.

언어로만 반복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탁월한 개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시스템의 붕괴와 국민의 이탈을 촉진하고 있다.

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언어보다 대통령의 주변인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사는 만사 (萬事) 아니면 망사 (亡事) 다.

정대화 상지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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