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크렘린 게이트' 갈수록 의혹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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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김정수 기자]지난달 중순 처음 폭로된 러시아 돈세탁 사건은 갈수록 의혹이 증폭되면서 크렘린 쪽으로 불길이 옮겨붙고 있다.

부패한 옐친가 (家) 와 마피아의 상관관계가 집중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지는 1일 러시아 돈세탁에 전세계 수십개 은행이 연루됐다고 보도했다.

◇ 크렘린 게이트 = 이탈리아 언론들은 최근 스위스 건축업체인 '마베텍스' 가 크렘린 보수공사 계약을 따낸 대가로 옐친 대통령 명의의 계좌에 1백만달러를 입금했으며, 큰딸 일리나 오쿨로바와 막내딸 타티야나 디야첸코의 신용카드 사용대금을 지불해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자문이기도 한 디야첸코는 이 돈으로 하루에 2천만리라 (약 1천3백만원) 어치의 옷을 샀다고 한다.

마베텍스는 파벨 보로딘 크렘린궁 총무수석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지난 93년부터 크렘린 발주공사를 거의 독점 수주해왔다.

마베텍스는 의자 하나를 50만달러로 계상하는 등 공사비를 터무니없이 높게 청구한 뒤 이 돈을 뇌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베텍스의 파콜리 회장은 러시아 국고를 빼돌려 돈세탁하도록 크렘린이 선정한 채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러시아 당국이 뉴욕은행 돈세탁 관련 수사공조에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베텍스사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게오르기 추글라조프 검사가 최근 해임됐다.

유리 스쿠라토프 전 검찰총장은 크렘린을 수사하다 크렘린측이 그의 성추문을 문제삼아 지난 4월부터 직무가 정지됐다.

추글라조프는 지난달 31일 최근의 각종 부패 관련 소문은 90% 이상이 사실이라고 폭로했다.

스쿠라토프는 크렘린의 압력으로 고위 관리들과 중앙은행 직원들을 포함한 8백여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물론 크렘린측은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 러시아 마피아 =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판이하다.

▶정부 혹은 당대의 실력자와 ▶합법적 형태의 기업 ▶폭력 (물리적. 정신적.제도적 폭력) 을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의 연합체라는 성격이 강하다.

옛소련 시절엔 당 간부.국영기업 지배인 등이 결합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드네프르 마피아 등이 활동했다.

막대한 지하경제, 통계와 현실의 차이는 이들의 탄생기반이자 주요 활동무대였다.

그러나 소련이 몰락하면서 사회 각계 각층을 망라한 다양한 세력의 연합체로 발전해갔다.

이 연합체는 사유화과정을 추진했던 소장개혁파들, 이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헐값에 국유재산을 매입해 막대한 이권을 챙긴 신흥 올리가르키 (과두금융산업재벌) , 자본제휴를 통해 천문학적 이득을 올린 서방투자가들, 이런 사실을 묵인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계속 펼쳐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정치인들,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자리를 보장받은 관료들을 모두 아우른다.

결국 어두운 곳에서 불리는 러시아 지배계급의 이름이 마피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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