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대법원장 '사법부 사망' 사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법원은 죽었다. " 베네수엘라 현정권의 초법적 사법개혁에 항의,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사망' 을 선언해 헌정 (憲政) 이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세실리아 소사 (56.여) 베네수엘라 대법원장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이 암살당하지 않으려고 자살했지만 그 결과는 같은 것" 이라고 선언한 후 돌연 사퇴했다.

지난 2월 대통령에 취임해 국가재건을 위한 개혁을 선언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나라 전체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기존의 입법.사법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먼저 전체 1백31석 중 1백21석이 자신의 지지자로 채워진 제헌의회를 통해 지난 23일 판사 해고권 및 법원 조사권을 제헌의회에 부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난주에는 민주적 가치에 따른 공화국 재건을 내세우며 사법적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약 4천7백명에 이르는 베네수엘라의 판사들이 부패나 기타 혐의로 정직되거나 해임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소사 대법원장의 주장은 국가개혁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실행돼야 한다는 것. 그녀는 제헌의회의 현 사태는 그 임무가 베네수엘라의 새 헌법을 제정하는 데 국한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른 대법원 판사들은 대법원이 이번 조치로 최고심판권을 침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며 사법개혁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6년 대법원장에 취임한 세실리아 소사는 지난해 범아메리카국가 대법원협의회 의장을 맡아 활동해 오는 등 베네수엘라 사법체계와 민주체제 수호에 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 사법부 현실 = 소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의 사법체계는 그동안 만성적 부패와 문제점으로 얼룩져왔다.

법조계의 뇌물시비가 끊이지 않고 터져나왔으며, 베네수엘라 전체 2만3천명의 수감자 중 9천7백명만이 유죄선고를 받았을 정도로 늑장처리가 만연해왔다.

법조계의 이같은 부패의 원인으로는 판.검사와 변호사에 대한 낮은 봉급수준과 이에 따른 인력의 절대부족이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법조인들이 뇌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베네수엘라 당국에 따르면 현재 사법부를 정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7백명의 검사를 추가로 뽑아야 할 실정이다.

차베스 이전의 라파엘 칼데라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억2천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으나 정권유지에 실패,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