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막힌 어린이 대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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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여름 바닷가를 찾아 즐겁게 뛰놀고 단꿈에 빠져 있던 유치원생이 23명이나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 화재사고는 어른들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 (人災) 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아직 정확한 화재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사고후 드러난 문제점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재삼 보여주고 있다.

수련원 시설부터가 안전의식과 유사시 대처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다.

숙소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슬라브 건물 위에 컨테이너 52개를 2개층으로 쌓아 만든 가건물이다.

또 내벽은 스티로폼과 합판 등으로 철판을 가리고 외벽은 목재로 치장을 했다고 하니 일단 불이 나면 삽시간에 전체로 번질 수밖에 없고 열에 약한 컨테이너는 엿가락 휘듯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비상구라야 건물 양옆의 두곳이 전부인데다 비상벨조차 울리지 않고 소화기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하니 이번 사고는 그야말로 예고된 인재였다고 할 것이다.

소방서가 수십㎞ 떨어진 곳에 다중이용시설을 지으면서 화재 대비책을 이처럼 허술하게 한 업주의 배짱에 기가 막힐 뿐이다.

한심하기는 이같은 건물에 대해 사용승인과 운영허가를 내준 감독관청도 마찬가지다.

건축법에는 컨테이너 건축물은 사무실이나 창고 등으로 임시 사용할 수 있을 뿐 일반건축물로 사용승인을 받을 수 없게 돼있으나 화성군은 이 수련원이 가건물인줄도 모른 채 서류검토만으로 사용승인을 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어린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인솔교사나 유치원측에도 문제가 있었다.

사전에 현장을 답사해 시설물을 점검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주의만 기울였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1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방에는 인솔교사가 없었다고 하니 어른들의 방심이 피해를 크게 했다고 할 것이다.

엉터리 시설로 영업을 한 업주와 감독을 소홀히 한 자치단체 관계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제 여름철을 맞아 학생들의 집단 야외수련활동이 본격화될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안전교육은 물론 제2의 씨랜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의 이런 시설에 대해 안전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수련시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시설들이 안전보다 장삿속을 앞세우는 일은 없는지 철저히 챙겨보기 바란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 되풀이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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