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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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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귀한 손님 오시니까 특별히 맛있는 막걸리 좀 부탁드려요”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조재구(45) 씨에게 이날의 인연은 큰 기회로 탈바꿈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꾸려가는 소박한 시골 양조장에 큰 바람이 분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성껏 빚은 막걸리를 배달한 조재구 씨. 누군가 귀한 손님이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걸리만큼은 자신이 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많이 놀랐죠. 귀한 손님이 대통령님이셨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체면도 버리고 6잔 연거푸 마셔

2005년 5월 2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과 농촌에 많은 애정을 가진 노 대통령에게 중앙정부의 도농교류와 관련된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시작한 한드미 마을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시골에 뭐 대접할 게 있나요. 그래도 고장의 명물이라고 저희 막걸리를 대접해 드린 거죠.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한잔을 드시고는 “참 맛있다”며 연거푸 5잔을 더 드셨데요. 권양숙 여사님도 4잔을 드시고요. 보통은 체면 때문에 한 잔씩만 드시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강막걸리 중 다섯 가지 곡물로 만든 ‘오곡막걸리’를 특히 좋아했다. 지하암반 180m에서 뽑아 올린 탄산수와 오곡의 조화는 걸쭉하고 진한 막걸리 특유의 풍미를 더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맛있게 먹어주는 만큼 큰 칭찬이 있을까? 그러나 이날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해

얼마 후 조재구 씨가 운영하는 대강양조장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께서 ‘대강 막걸리’를 찾으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청와대의 주문은 계속됐고, 청와대 비서관의 방문이 이어졌다. “저희 막걸리가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됐다고 말하더라고요. 총 4군데의 막걸리가 후보로 올랐데요.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천대받던 막걸리에겐 끝없는 영광이었죠.”

이후 노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은 연일 이어졌다. 2006년 4월 1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최근 쌀 개방 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중 생각난 것이 한드미 마을에서 마신 막걸리였다”며 “아주 맛이 좋아 계속 이것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6년 3월 31일 ‘3부 요인 및 헌법기관장 청와대 만찬’, 4월 14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정기 간담회’에도 어김없이 대강 막걸리가 등장했다. “2007년에 청와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귀한 손님이 오는데 꼭 저희 막걸리를 대접하고 싶다고요. 부랴부랴 막걸리를 챙겨서 다음 날 오전까지 청와대로 갔죠. 그날 뉴스를 보니 하인즈 워드 선수 모자가 청와대를 방문했더라고요.”

이후 각 언론들은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을 기사화했고 ‘대강 막걸리’의 인기 역시 연일 높아만 갔다. 하지만 조재구 씨에겐 고민이 늘어가고 있었다. “청와대에 납품을 시작한 일을 1년 넘게 비밀로 했어요. 자칫 잘못했다간 대통령님께 누가 될 수도 있잖아요. 막걸리 좀 더 팔아보겠다고 그런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대통령이 보내주신 인삼으로도 술 담갔죠.”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식이 거행됐다. 조재구 씨의 애틋함은 남달랐다.“안타까웠죠. 저희 막걸리를 참 사랑해주신 분인데. 아쉬운 마음에 고향 봉하마을에 막걸리 2000병을 보내드렸어요. 그 술로 5만 명을 접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후 노 전 대통령님께서 직접 막걸리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삼을 보내주셨어요. 영원히 보관할 방법을 찾다가 인삼주를 담갔죠.”

현재 대강 양조장은 연평균 200만~300만병을 판매해 3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918년에 시작해 4대째 내려오는 대강 양조장은 지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신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막걸리가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검은 콩 막걸리’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죠. 종종 일본의 효모회사나 주류회사에서 기술이전을 부탁하면서 찾아와요. 살아있는 효모를 마실 수 있는 술은 한국의 막걸리가 유일하다고 칭찬을 하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시작이에요.” 대강 양조장의 발효실에는 술을 담아놓은 큰 옹기 십여 개가 있다. 그 옹기에는 소화 원년(1926.12.25)이라는 제작일시가 적혀있다. 그 옹기 안에는 80년 된 밑술이 고유의 진한 향을 내뿜고 있다. 80년을 차곡차곡 담가온 막걸리의 향이 이제야 기지개를 펴고 있다.

오늘은 음력 8월 6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생일. 이날을 기념해 그의 생가 복원식이 열렸다.

뉴스방송팀 최영기,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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