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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개각] 제대로 인선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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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24개각의 인선기준은 전문성.개혁성.참신성이었다.

이와 함께 비정당인이라는 점이 기본 전제가 됐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능력위주 인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행정능력이라는 주요한 요소가 결여됐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밝힌 다른 인선기준이 충족된 것도 아니다.

우선 전문성 문제다.

얼핏 보면 그런대로 각기 관련분야에 속해 있다.

환경운동을 하던 손숙 (孫淑) 씨가 환경부장관이 된 것도 한 예다.

그러나 孫장관의 전공은 아무래도 연극이다.

또 환경시민운동을 했다고 해서 환경분야 전문가로 보기는 어렵다.

노사관계가 아주 미묘하고 중차대한 시점에 이상룡 (李相龍) 전 강원지사가 노동부장관에 임명된 것도 의아스런 대목이다.

李장관이 민주노총 등 강경 노조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 나갈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건설교통부장관직에 평생을 세무행정에 몸담아온 사람이 간 것도 그렇다.

재경통을 실물경제를 총괄하는 산자부장관에 임명한 것도 이상하다.

둘째는 개혁성이다.

아마도 청와대는 이 부분에 너무 집착한 듯하다.

전문성에서 다소간의 손해를 감수한 것도 그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개혁성은 기본적으로 전문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목소리가 크다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운동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새 내각의 개혁성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의 면면은 개혁적이라기보다는 저돌적인 인사들로 분류하는 게 타당할 듯하다.

셋째, 참신성이다.

새 각료에 생소한 이름이 더러 있다.

이름은 알만하더라도 뜻밖의 인물이 임명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참신성으로 포장되긴 어렵다.

참신성 역시 전문성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근 청와대가 강조해온 '젊은 피' 가 수혈되지도 않았다.

이런 마당에 행정능력이 강조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여간한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 같은 곳은 노회한 공무원도 버티기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여간한 강골이 아닌 이해찬 (李海瓚) 전임장관도 그벽을 넘지 못했다.

그럴진대 행정경험이 없는 학자출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환경부도 마찬가지다.

손숙장관은 조직생활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사교와 통솔은 분명 다르다.

여성장관 기용 약속도 살릴 겸 명분을 끌어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그렇다고 비정당 원칙이 지켜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의 총선출마 때문에 세워진 원칙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내각에서 정치색을 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상천 (鄭相千) 해양수산부장관은 유임됐다.

그가 전국구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해서 정치인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박지원 (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도 정치인이다.

물론 이런 문제로 인해 이번 개각의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된다는 지적들도 있다.

강봉균 재경부장관과 임동원 (林東源) 통일부장관, 조성태 (趙成台) 국방부장관, 김태정 (金泰政) 법무부장관, 차흥봉 (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 진념 (陳稔) 기획예산처장관, 김광웅 (金光雄) 중앙인사위원장, 오홍근 (吳弘根) 국정홍보처장 등은 청와대가 밝힌 조건을 그런대로 충족시킨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됐든 김대중 대통령은 2기 내각을 가동,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내각 전체를 통한 시스템적 접근은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때문에 DJP지분을 따지지 않으면서, 지역안배를 했다는 설명 등도 상당부분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金대통령이 또다시 앞에 나서 일일이 챙겨야 할 것 같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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