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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린에 푹 빠진 주부들

중앙일보

입력

편곡한 아리랑과 민요를 연주해 외국인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연주자. 국내 유명 뮤지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와 남편밖에 모르던 평범한 주부들이 취미로 배운 만돌린 연주로 해외 공연까지 다녀오는 등 프로 못지 않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은 ‘분당 만돌린 오케스트라’ 단원들. 정기 공연을 앞두고 맹 연습중인 현장을 다녀왔다.


낯설지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악기, 만돌린
지난 9일 오전 11시. 분당구청 대회의실에선 카펜터스(Carpenters· 1970년대에 유명했던 미국의 남매 듀오)의 ‘싱(sing)’이 흘러나왔다.귀에 익숙한 곡이지만 음색이 부드럽고 청아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회의실 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려 50여 명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추억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주자 대부분이 40~60대 주부들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악기는 품 안에 쏙 들어 갈 크기의 작은 기타. “만돌린이란 악기에요. 어때요? 음색 만큼이나 예쁘죠?(김귀옥·46·총무)” 이들은 다음달 정기 콘서트(31일·성남아트센터)를 앞두고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피아노·바이올린·플룻…. 손쉽게 구하고 배울 수 있는 악기도 많은데, 이들은 왜 굳이 이름조차 생소한 만돌린을 선택한 것일까?

지휘자 이석기(83·한국만돌린협회 부회장)씨의 무료 강좌가 계기가 됐다. 어린시절 일본에서 만돌린을 접하고 배웠던 이옹은 매력적인 음색의 만돌린을 널리 알리고 싶어 10여 년 전부터 분당 지역을 돌며 무료 강좌를 시작했다. 이옹은 “만돌린은 바이올린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활 없이 손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주부들도 쉽게 배울 수있는 악기”라고 말했다.

악장을 맡고 있는 유은영(44·분당구 야탑동)씨는 “평소 악기를 배우려면 수준높은 실력을 갖추고 싶었다 ”며 “악기 선택을 놓고 고민하던 중 모양·음색이 독특하면서도 배우기 어렵지 않은 만돌린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세컨 파트장 김경혜(51·분당구 정자동)씨는 우연히 TV에서 만돌린 연주를 들은 것이 동기가 됐다.

김씨는 “만돌린의 영롱하고 맑은 음색에 빠져 있던중 분당에 이사오자 마자 무료 강좌를 찾아갔는데 벌써 6년이 지났다”고 회고했다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꾸준한 연주 봉사때문
분당 만돌린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올해로 10년째다. 아마추어 단체지만 곁곁이 쌓인 세월로 인해 이젠 프로급 연주실력을 갖춘 단체가 됐다. 실력 만큼 무대도 커졌다. 단장을 맡고있는 조옥련(49·분당구 금곡동)씨는 “지난해엔 베이징대학 올림픽 기념공연에, 올해는 베이징 중산음악당의 중국시민을 위한 자선음악회에 각각 초청돼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며 “연간 20여 회의 크고 작은 연주회를 꾸준히 연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주는 멋진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건 아니다. 분당 만돌린 오케스트라가 유명해진 진짜 이유는 꾸준한 연주 봉사활동 때문이다. 창단 초기부터 지역 사회의 각종 문화 행사장·병원·하나원·나눔의 집·복지관 등을 찾아가 연주를 해 왔다. ‘기타’ 파트의 이경재(61·분당구 정자동)씨는 이러한 봉사활동에 이끌려 단원으로 들어온 케이스. 이씨는 “음악을 통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나아가 마음까지 치유를 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라며 뿌듯해 했다.

하지만 정작 음악으로 기쁨을 누리는 수혜자는 단원들 자신이다. 김경혜씨는 “만돌린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도 평범한 주부로 지냈을 것 같다”며 “삶의 반전을 가져다 준 만돌린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이유림 기자 tamaro@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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