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일엽 '휴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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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뒤뜰에 흘린 종이

날려온 휴지임을

모름이 아니건만

하도 아쉬울 맘에

행여나 님 던진 편지인가

만적거려 보노라

- 김일엽 (金一葉.1896~1971) '휴지'

한국 신여성 제1세대의 시인이다.

이화학당을 마치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신여자' 를 창간한다.

그녀의 신여성적 편력 끝은 수덕사 송만공에게 귀의, 비구니가 되는 일이었다.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지금 한국의 산중 비구다.

이 시도 아닌, 시조도 아닌 듯한 시의 가락은 유치한 바 있음에도, 큰소리 버럭 질러대는 허장성세보다 살아온 날의 저쪽에 남은 애련의 흔적이기에 돋보인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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