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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리포트] 재벌 빚줄이기 '뼈깎는 노력'부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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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벌들 부채비율을 줄인다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요구는 합당한데 재벌들이 우는 소리를 하는 건가.

각기 다른 부채비율 감축방안의 근거는 무엇이고, 장.단점은 무엇인지 두 전문기자가 문답으로 풀었다.

- 대통령까지 다그치는 걸 보면 재벌들이 '부채비율 2백%' 를 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더구나 "알아서 하라" 고 해 된 것이 없었던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것도 어느 정도는 정부의 강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 부채비율 감축이 한국의 구조개혁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핵심은 그것을 추진하는 길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사정이 각각인 개별 기업들이 어느 것을 선택해 추진하느냐겠지요.

- 자산매각이나 증자를 통한 부채상환과 자산재평가가 있는데, 각각 개별 기업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 모두에게 편한 방법은 없지요. 재벌들이 얘기하는 자산재평가부터 그렇습니다. 자산가격을 올려 (업계 표현으로는, 시가로) 계산하면 간단하게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정부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허용하지 않으려면 왜 지난해 5월에 자산재평가법을 개정했습니까.

- 기업으로 돈이 들어오거나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장부상 조작' 이라는 것이지요. 이를 두고 누가 구조조정을 했다고 하겠습니까.

- 자산을 매각해 그 돈으로 부채를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

- 부채규모를 가장 많이 줄인다는 점에서 정부가 바라는 방법의 하나지요. 부채가 줄어드니 금융비용을 낮출 수 있고, 또 외국인에게 팔면 달러가 유입되는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대내외적으로는 이 방법이 '진정한 구조조정' 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외국투자자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요.

- 그렇지만 자산매각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까. 더구나 2백%까지 부채비율을 줄이려고 많은 기업들이 일시에 자산을 매각하려 들면 자산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부채감축의 폭도 미미할 수 있고요.

- 유상증자로 부채를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

- 자산매각의 경우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것도 부채감축과 외자유입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부채비율 감축효과가 가장 큰 방법입니다. 문제는 주식시장이 대량의 유상증자를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느냐는 겁니다. 주가가 안정돼야 쓸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래서 정부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금리를 낮춘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 구조조정 후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주가가 다시 하락해 투자자들만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 출자전환도 기업들이 바라고 있는 것 같던데요.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이 줄어들어 경영권을 잃게 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금융기관의 기업지배도 심화되고요. 출자전환은 장부상으로는 유상증자를 해 부채를 갚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효과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길게 보면 해당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채권기관이 주식투자수익을 남길 수도 있지만, 이자를 받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니까 당장은 채권기관의 채산성이 악화됩니다.

- 대부분의 방법들이 부동산이나 주가하락 등의 혼란이 예상되는데, 기업은 어찌 해야 하나요.

- 자산재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방침이 확고하니, 재벌에 남은 선택은 자산매각.증자 등의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모든 재벌이 동시에 같은 방법을 쓰면 금융.자산시장에 충격이 클 것입니다. 시장상황과 개별 기업의 사정을 감안해 이들 방법을 혼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해를 뒤돌아보면, 구조조정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한 기업들의 주가가 다른 기업들보다 더 높게 형성되었습니다. 먼저 구조조정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재벌들이 자산매각 등 뼈를 깎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랬는데도 부채비율 2백%를 맞출 수 없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겠습니까. 국민정서도 그렇고요.

- 재벌들의 성실한 노력이 먼저라는 얘기군요. 사실 외국투자자들도 2백% 목표달성 그 자체보다 재벌들이 얼마나 '선의' 를 가지고 성실히 구조조정을 하느냐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김정수.권성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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