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발칸] 코소보난민들 사선을 넘어 엑소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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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코소보 전 지역에서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학살과 추방' 이 공공연히 행해진다는 소식이 흉흉한 29일. 아직도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알바니아와 코소보 국경 산악지대 모리나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유고군에 의한 학살과 전쟁을 피해 코소보로부터 도망나온 피난민들의 대행렬이 16㎞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부녀자와 아이들로 이뤄진 피난민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등에 가득 봇짐을 짊어진 채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28일 오전 3시부터 잠시 국경을 개방, 피난민들의 신분증 등을 뺏으며 한시간 안에 국경을 넘을 것을 명령했던 유고군은 그나마 29일 오전 11시55분쯤 알바니아로 통하는 국경 검문소 세곳을 전격 폐쇄했다.

이날까지 6만여명이 빠져나간 코소보 국경에는 국경폐쇄 조치로 약 10만명의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의 발이 묶여버렸다.

이로써 몬테네그로 공화국 접경과 코소보 남동쪽 마케도니아 국경에는 난민행렬이 늘고 있다.

나토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하루 평균 2백~3백명에 이르던 피난민들은 28일 현재 이미 1천2백명을 넘어선 상태. 일부 난민들은 불가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피난길을 떠나고 있다.

국경을 넘은 피난민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알바니아계 남자들은 대부분 처형되거나 세르비아계 무장경찰 등에 이끌려 '알 수 없는 곳' 으로 붙잡혀 갔다.

현지에는 세르비아가 '초토화 작전' 을 벌이고 있으며, 알바니아계가 서방의 공습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 로 쓰여지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코소보의 주도 프리슈티나는 강제추방과 학살이 행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 알바니아 민간 TV방송 아르베리아는 "유고군이 프리슈티나를 봉쇄한 채 주민들의 이동을 일절 불허하고 주민 수십명을 살해했다" 고 전했다.

알바니아 국경에서 20여㎞ 떨어진 코소보 제2의 도시 프리즈렌에서도 유고군이 탱크와 총을 앞세우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게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옷가지만 걸친 알바니아계가 떠난 마을은 불태워지고 있다.

제이미 시어 나토 대변인은 프리즈렌과 프리슈티나뿐만 아니라 코소보내 레코바치.포두예포.스르비차.말리세보.다코비차 등 다섯지역에서도 전면적인 학살과 추방이 자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2백만 코소보계 주민 가운데 25%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면서 "코소보 주민들의 인권상황이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상황" 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유고 주변국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의 처리문제에 고심하고 있다.

이탈리아 관리들은 코소보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아드리아해 연안 항구도시인 바리와 포지아에 난민수용소를 설립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또 난민들을 수용소로 나르기 위한 연락선 4척이 대기중이며 텐트 수백개 등 관련 시설이 조립되고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도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아시아 외무장관 회의에서 코소보 난민들에 대한 지원 확대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EU) 은 지금까지 난민구호를 위해 2천1백60만유로 (약 2천3백30만달러) 를 지원했으며 2천만유로 (약 2천1백60만달러) 규모의 추가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관리들은 덧붙였다.

이훈범.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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