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러시' 외국자본 금캐러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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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 금을 캐러 외국인이 몰려든다.

올 7월 광업시장 개방을 앞두고 다국적 광업회사 등 해외업체들이 첨단기술로 조사.작성한 광물분포 지도를 들고 금광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고령토 산지로만 알려진 전남 진도군 가사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신안군 하의도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이곳에서 캐나다계 광산업체 인도네시아 골드필드사의 국내 합작법인인 코리안 익스플로레이션이 다음달 금 매장량 확인을 위한 시추에 들어간다.

이 회사 백두현 사장은 "캐나다 본사의 탐사팀이 지난 88년 이곳 해안절벽에서 금을 많이 함유한 지층을 발견했다" 고 말했다.

95년 설립된 이 합작사가 탐사한 금광은 전남 나주 덕음광산과 영암 독천.상은광산 등 모두 8곳. 또 충북 음성 태극광산의 광업권자인 태화광업은 일본 금광개발업체인 스미토모 컨설팅사가 지난해 태극광산을 탐사한 뒤 공동개발을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30여년째 휴광하고 있는 경기도 가평 대금광산 역시 최근 일본자본이 관심을 보임에 따라 올해 안에 시추할 예정. 이 광산 광업권자인 정영훈씨는 "외국인의 광산경영이 가능해지면서 투자자들이 많이 나선다" 며 "매장량만 좋으면 개발초기에 들어가는 수십억원의 비용을 모두 해외조달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산자부 산하 광업등록사무소 박충식씨는 "탐사활동을 하는 가행 (稼行) 광구 숫자가 매년 줄기만 하다가 지난해엔 갑자기 1백19곳이나 늘었다. 이중 1백곳쯤은 외국자본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된다" 고 밝혔다.

기초조사를 해놓고 때를 기다리는 업체들도 있다.

호주 광산회사인 BHP는 84년부터 8년간 가사도와 경남 통영.경북 포항 등 70여 지역에서 금맥을 탐사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부경대 박맹언 (응용지질학) 교수는 "그중 6곳을 개발하기로 했다가 당시 외국인의 광산소유가 불가능해 포기했지만 여건만 되면 돌아올 것" 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유타 인터내셔널과 GM사도 각기 86년과 97년에 전남.경남지역 금 광상을 조사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은 한국내에 그동안 개발되지 않은 '화산기원 천열수 광상 (淺熱水 鑛床)' 이 폭넓게 존재하는 데다 방치됐던 기존 광산들도 채광을 기계화하고 미생물을 이용한 첨단 선광방식을 쓰면 채산성이 충분하기 때문.

화산기원 천열수 광상이란 화산활동에 따라 땅속 1㎞ 깊이에 금성분이 모여 이뤄진 지층대로 암석에 함유된 금의 양이 적은 대신 넓게 퍼져있는 것이 특징.

80년대부터 일본.호주.인도네시아 등 환태평양 지역에서 이런 금광을 많이 찾아낸 외국기업들이 같은 지질구조를 지닌 전남.경남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금광업은 대형 금광이었던 무극광산이 지난해 문을 닫은 뒤 사실상 고사상태다.

98년 생산량은 4㎏ (1천67돈) .금탐사 자체가 크게 줄어 90년대 초까지는 매년 순금 4~8t 정도를 뽑아낼 수 있는 금맥 (화강암 50만~1백만t) 을 찾아냈으나 96년 이후엔 연 0.16~1.6t (화강암 2만~20만t) 안팎을 찾는 데 그치고 있다.

국내 탐사를 전담하는 광업진흥공사가 금광탐사에 쓰는 비용은 외국계 기업 하나에도 못미친다.

코리안 익스플로레이션이 97~98년 8개 광산 탐사에 2백만달러 (24억원) 를 쓴 데 비해 광진공은 같은 기간 중 각종 금속광산 22개에 13억원만 투입했다.

산자부 광업진흥과 송규헌 과장은 "광업 비중이 국민총생산의 0.25%에 불과한 상황에서 외국인들의 진출은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 전망했다.

그러나 고려대 윤성택 (자원공학) 교수는 "단기적 시너지 효과는 있지만 길게 보면 1백년전 주요 자원의 채광권을 열강에 넘겨준 것처럼 자원 자주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고 우려했다.

기획취재팀 이상언.강찬수.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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