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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 자매의 아주 특별한 청소사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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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130호 05면

현실의 잣대로 잰다면 ‘선샤인 클리닝’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삶을 표현할 말은 이 네 글자 외에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리멸렬. 주인공 로즈(에이미 애덤스)는 고등학교 시절 치어리더 활동으로 알게 된 풋볼팀 쿼터백 맥(스티브 젠)과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사이. 다들 맥과 로즈가 결혼할 거라 기대했지만 웬걸, 맥은 딴 여자랑 결혼했고 로즈는 맥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오스카를 혼자 키우며 청소부 일로 생계를 꾸린다.

영화 ‘선샤인 클리닝’, 감독 크리스틴 제프스, 주연 에이미 애덤스·에밀리 블런트

몰래 모텔에서 만나는 맥은 곧 이혼할 거라고 늘 다짐하지만 로즈만 빼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로즈의 동생 노라(에밀리 블런트)도 언니 못지않다. 툭 하면 직장에서 잘리는 통에 변변한 직업도 없고 연애도 신통찮은 노처녀. 두 자매의 아버지 조(앨런 아킨)는 하루는 새우, 하루는 사탕 식으로 품목을 바꿔 가며 장사를 벌이지만 이 또한 지지부진하다.

로즈와 노라 자매가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사업은 범죄 현장 청소대행업. 누군가 살해되거나 자살한 현장의 피를 닦고 잔해(!)를 치우는 ‘3D’ 직업이다. 처음엔 좌충우돌 실수 연발이지만 이내 위생복과 장비를 갖추고 ‘선샤인 클리닝’이라는 회사 이름까지 지어 본격적인 사업을 펼친다. 로즈는 사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려고 야간 강좌도 듣는다. 얼핏 햇빛(sunshine) 한 줄기가 이 ‘루저(loser) 가족의 찌질한 삶’에 비치려나 싶은 찰나,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노라가 혼자 범죄 현장에서 작업하다 불을 내고 만 것. 집은 전소되고 둘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할까. 물론이다. ‘선샤인 클리닝’은 구질구질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굴러가는 삶의 이모저모를 적당한 양의 위트와 유머를 섞어 보여 준다. 끔찍한 범죄 현장에 변변한 장비 없이 들어간 자매의 반응이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카에게 이상한 얘기만 계속 늘어놓는 이모의 괴짜 짓 등 곳곳에 잔잔한 웃음을 유발할 만한 요소가 지뢰처럼 숨어 있다. 커다란 폭발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에이미 애덤스와 에밀리 블런트 등 수준급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쿨하면서도 따스한 감성은 선뜻 평가절하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2006년 아역배우 애비게일 브레슬린을 스타로 만들며 미국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리틀 미스 선샤인’과 같은 제작사, 같은 프로듀서가 만들었다. ‘리틀 미스 선샤인’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던 앨런 아킨도 다시 반가운 얼굴을 보여 준다. 그런 탓인지 기대 수준이 한껏 올라가 있던 이들로부터는 그다지 호평을 받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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