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57.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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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7장 노래와 덫

방으로 직행하려던 그녀는 그러나 방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출입문으로 가더니 문을 안으로 잠갔다. 앙큼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 먼저 방으로 들어가 방에 깔려 있던 요때기 아래로 하반신을 살짝 밀어넣으면서 혼잣소리였다.

"아이 추워. 한겨울인가 봐요. " 그때 벌써 봉환은 그녀의 등 뒤에서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자세를 바꾸어 마주 앉은 것도 그때였다. 봉환의 두 귀를 잡아 끌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말했다.

"봉환씨. 지금 나한테 엉뚱한 짓 하려는 거죠. 그죠?" "성숙한 남녀가 방 안에서 만났는데. 엉뚱한 짓좀 하면 어떻습니껴. " "어마나. 언니 말처럼 남자는 모두 도둑놈이야 정말. 우리 앉아서 얘기나 해요. " "얘기하려면 식당에서 하지, 문 달린 방에까지 끼집어들어올 까닭이 뭡니껴?"

"그럼 대낮에 절 어쩌겠다는 심보란 말이에요?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 "내가 희숙씨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이라요 시방?" "나한테 언제 그런 말 했죠?"

"내가 왜 희숙씨를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 말이라카면 골백번도 더 하고 싶었지만, 애인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한테 무턱대고 사랑타령을 늘어놓을 수가 있었겠습니껴?" "좋아요. 사랑하고 있다 해요. 그렇다고 같이 자야 해요?"

"애정표현을 하자는 것이지 같이 자자겠습니껴?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이 자는 것은 가을날 밤에 울밑에서 귀뚜라미가 울 듯이 자연스런 현상 아닙니껴. 우리끼리도 꼭 뜸을 들여야 하겠습니껴? 한 집에서 같이 섞여 살면서 물에 기름 돌 듯이 따로따로 놀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속절없이 식어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은 희숙씨도 이해하고 남지 싶은데요? 노는 기 천상 철부지들 같습니더. "

"봉환씨 여자경험 많죠?" "내 참, 지금 이 나이에 여자경험 없다카면 그게 말이 됩니껴? 없었다고 딱 잡아띠면 희숙씨가 덜컥 믿겠어요?나보다 나이가 적다는 희숙씨도 애인이 있지 않습니껴. 서로가 터놓고 보면 피장파장인 걸 가지고 억시기 까탈시럽게 굴어쌌네요. 내 역시 여자경험 한 두 번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한때 머물다가 속절없이 지나가던 바람에 불과했더란 말입니더. 초면에 만났는데도 왠지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던 여자는 희숙씨가 처음이라는 사실만 꽉 믿었뿌소. 그게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눈물겨운 현상이 아니겠습니껴. 그런데도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껴? 그러고 보니까,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는 노래까지 생각나네요. "

"한 겨울에 봉선화는 왜 생각나세요?" "내 처지가 늦게 피어서 괄시당하는 봉선화만치 눈물겹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껴. " "저 능수능란한 말솜씨좀 봐. 여자경험 한 두 번뿐인 기 정말 믿어도 돼요?" "못 믿겠으면 어쩔래요? 법원으로 달려가서 내용증명이라도 띠다 드릴까요?"

"날 처음 보았을 때, 왜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글쎄요…. 가슴에 뭐가 뭉클하는 게 있어서 눈물이 났던 것은 분명한데, 희숙씨는 가슴에 뭉클했던 게 뭔지 쪽집게로 찝어내듯이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껴?" 그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몸을 움츠리면서 요때기 밑에서 하반신을 꺼내 저만치 물러앉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 언니한테 휴가받아서 대전으로 목욕이라도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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