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의 시한부인생 사는 김제욱씨 대학 졸업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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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 둔 어느 가정이 이처럼 평안할까. 25일 오후 서울강남구일원동 자택에서 만난 김제욱 (金濟郁.23) 씨와 아버지 김규진 (金圭鎭.외국어대 체코어과) 교수 부자는 시종 밝은 표정과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26일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평점 4.5점 만점에 3.75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제욱씨는 근육 이양증 환자다.

근육 위축증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병은 세월이 흐르면서 온몸의 근육이 퇴화하다 호흡 근육까지 마비되면서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 하지만 정신 부문엔 지장이 없어 온몸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죽을 때까지 고스란히 느껴야만 하는 고통스런 병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3만여명으로 대부분이 10대 이하의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해 청소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같이 몹쓸 병에 걸린 제욱씨가 한 학기의 휴학도 없이 학업을 마치고 20대 청년이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제욱씨가 근육 이양증 판정을 받은 건 유학 중이던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던 7살 때. 12살 때부터는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했고 지금은 전신이 거의 마비돼 떠먹여 주는 음식을 삼키기도 버거운 상태다.

하나뿐인 자식, 손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24시간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이 학사모를 쓰기까지 金교수 부부의 어려움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준비에만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하교,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어 4년 내내 곤란을 겪은 대학 생활, 근육이 굳어지는 고통을 풀어주기 위한 밤샘 마사지….

제욱씨는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아마 오래 전에 죽었을 거예요" 라며 웃었다.

영어와 인터넷에 능한 제욱씨의 꿈은 영문학을 계속해 영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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