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실 무시한 개혁도, 집단행동도 문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형사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와 검찰이 갈등을 빚더니 급기야 검사들이 집단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100여 명이 그제 밤 긴급회의를 열고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 시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데 이어 어제는 부산.대구지검에서 같은 회의가 열리는 등 전국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사개추위가 국민의 의견 수렴이나 사전 검증 절차 없이 급격하게 변혁을 시도한다는 검사들의 지적에 귀 기울일 만하다.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채 1주일 만에 형사소송법 개정 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면 재판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법관 수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서 고비용 저효율 제도란 지적이 있다. 그런 만큼 최종 수요자인 국민의 의견 수렴과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채 불쑥 시안을 내놓았으니 짜인 일정에 맞춰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공판중심주의도 결국 이를 위한 하나의 방안일 뿐이다. 더구나 이는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영.미식 재판 형태다. 인권 보호에 더 효과적이란 이유로 수사 현실엔 눈감고 이 제도의 도입에 집착한다면 일의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공판중심주의 자체가 사법개혁의 목표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검사들이 수사 종사자로서 수사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등과 관련한 의견을 상부에 건의하는 것 자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집단행동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검사들의 우려가 충분히 전달된 만큼 전국 지검별로 성명서를 내는 것은 이제 중단해야 옳다.

사개추위는 인권 보호와 수사 현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단계적인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검사들도 반발만 할 게 아니라 자백.조서 중심의 수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 개발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