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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부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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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문의 기원=에드워드의 증조부 패트릭 케네디와 외증조부 토머스 피츠제럴드는 1840년대 후반 아일랜드를 휩쓴 대기근을 피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보스턴 근방으로 이주했다. 패트릭의 아들 패트릭 조지프는 보스턴 부두에서 하역인부로 일하다가 부둣가의 선술집을 사들여 운영한 후 나중엔 위스키 업체를 인수해 보스턴 주류업계의 유력인사가 됐다. 그 후 정계로도 진출해 보스턴 정계의 ‘실세’가 됐다. 역시 거리의 행상부터 시작해 식료품가게와 선술집 및 여관 주인으로 돈을 모은 토머스 피츠제럴드는 훗날 아들 존 F 피츠제럴드를 ‘리퍼블릭’지의 발행인이자 ‘허니 피츠’라는 별명의 정치인으로 성장시켜 보스턴 시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가문의 결성=패트릭 조지프의 아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는 풍요해진 집안 배경 아래 보스턴 라틴학교와 하버드대학이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스물다섯 나이에 지방은행장이 됐다. 그 이듬해 그는 권력의지로 똘똘 뭉쳐 보스턴 시장이었던 존 F 피츠제럴드의 딸, 로즈와 결혼했다. 로즈 역시 보스턴 시장이었던 아버지의 딸답게 기품과 세련미 그리고 정치적 식견까지 겸비한 숨은 야심가였다. 이 부부는 1915년 첫아들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주니어를 낳은 후 1932년 막내 에드워드가 태어날 때까지 17년 동안 아홉 명의 자녀(4남5녀)를 두었다. 이들 모두 ‘야심의 씨앗’이었다.

#가문의 짧은 영광=1937년 12월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는 미국 외교가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는 영국 주재 미국대사가 됐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가 1961년 제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케네디가의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절정에 오른 영광은 너무 짧았다.

#가문의 긴 위기=첫째 딸 로즈메리는 정신지체장애가 있었다. 큰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대통령이 된 둘째 아들 존 피츠제럴드는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사라져 신화가 됐다. 셋째 아들 로버트 역시 민주당 대선유세 중 암살당했다. 대통령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여 세계를 울렸던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보다도 더 젊은 38세에 세상을 떴다. 그나마 천수를 누린 것은 넷째 아들이자 막내인 에드워드뿐이었다. 그마저 이번에 죽었다.

#가문의 부활=셋째 딸 유니스의 소생 마리아 슈라이버는 배우 출신인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결혼해 그를 캘리포니아 주지사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그는 고전하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의 자녀인 조지프와 캐슬린 타운센드는 각각 연방 하원의원과, 메릴랜드주 부지사를 역임했다. 하지만 현재 케네디가의 유일한 정치 현역은 에드워드의 아들 패트릭 케네디 연방 하원의원뿐! 적어도 케네디가의 화려한 명성에 걸맞은 부활은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가문의 부침이 있는 사회에 오히려 희망도 있다. 빈한하고 비루했던 가문이 영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야 하고 그 반대로 추락을 경험하는 가문도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있는 사람들은 뭘 해도 되고,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기를 써도 안 되는 세상이라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