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부친타계소식 고민끝 조치훈 9단에 알리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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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버지의 별세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치훈 9단의 맏형 상연 (5단) 씨는 14일 일본에서 급거 귀국하면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

부친 (조남석) 의 타계 소식을 당연히 전해야 하나 동생이 프랑스에서 도전기를 치르고 있어 여간 망설여지는 게 아니었다.

이날 趙9단은 파리 일본문화회관에서 일본 최대 기전인 제23기 기성전 도전 7번기 중 첫 대국을 고바야시 고이치 (小林光一) 9단과 두고 있었다.

13일 시작된 이번 대국은 15일 새벽 (한국시간) 결과가 판가름날 예정. 평생 라이벌인 두 기사의 대결은 일본은 물론 세계 바둑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빅 이슈. 부음을 알리는 것은 곧바로 趙9단의 패국을 의미한다.

신경을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프로기사에게 정신적 혼란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효심이 깊은 趙9단으로선 소식을 듣자마자 바둑돌을 거두고 공항으로 달려갈 공산이 크다. 숙고 끝에 상연씨는 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둑은 너희들에게 모든 것이다. 부모보다 시합이 우선이다. 그런 각오로 바둑을 두라" 는 고인의 평소 지론에 따르기로 한 것. 그는 일본기원 관계자들에게도 대국이 끝날 때까지 타계 소식을 일절 함구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하루가 무척 길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과 동생의 효심을 생각할 때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어요. 나중에 치훈이도 형의 마음을 이해할 겁니다."

발인은 15일 오전 8시 서울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서 趙9단 없이 거행될 예정. 그는 17일 입국해 다시 뵐 수 없는 부친의 묘소에 성묘할 수밖에 없다.

한편 고인이 안치된 서울중앙병원에는 14일 趙9단의 숙부 조남철 9단을 비롯, 프로기사들이 잇따라 조문해 명복을 빌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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