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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솔트레이크시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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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네바다.뉴멕시코.몬태나.아이다호.애리조나.와이오밍.유타.콜로라도 등 로키산맥을 둘러싼 미국 8개주의 면적은 2백20여만 ㎢. 한반도의 열배에 가깝다.

그러나 인구는 모두 합쳐 9백만명.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지도에서나 찾아보고 비행기에서나 내려다보는 미지의 지역이다.

이곳의 도시 중 외부인에게 잘 알려진 곳은 콜로라도주의 덴버와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다.

덴버는 미국 유수의 화려한 휴양지다.

그에 비해 솔트레이크시티는 특이한 점이 없어 보이는 고원도시일 뿐이다.

솔트레이크시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특이한 역사 때문이다.

모르몬교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의 본부가 이 도시에 있다.

도시뿐 아니라 유타주 전체 인구의 3분의2 가량이 모르몬교도다.

1847년 박해를 피해 집단이주한 모르몬교도들이 이 도시를 세우고 이 지역의 산업을 개발했다.

모르몬교도의 이 지역 정착은 서부개척사의 중요한 장면이다.

모르몬교는 조지프 스미스 (1805~44)가 1831년 뉴욕주에서 개창했다.

특이한 교리와 강령으로 단기간내에 강력한 교단을 이룩했지만 기성종파와의 갈등 때문에 서쪽의 미개척지로 거듭 근거를 옮기며 모르몬교의 '복지 (福地) 도시' 를 만들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스미스가 암살당할 무렵 모르몬도시 나우부는 시카고보다 더 큰 일리노이주 최대 도시였다.

스미스가죽은 후 브라이엄 영 (1801~77) 이 1만여명의 교도를 이끌고 로키산맥을 넘어가 솔트레이크시티를 세웠다.

엄격한 도덕성과 강한 규율을 가진 모르몬교도들은 협동을 통해 개척지의 가혹한 조건을 극복하면서 인디언 원주민들과도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했다.

유타주민들은 1887년까지 여섯번이나 유타를 주 (州) 로 만들기 위한 청원을 연방정부에 보냈지만 거듭 거부당했다.

모르몬교회의 지역질서가 연방의 원리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857년에는 모르몬교도들이 반란상태에 있다고 판단한 연방정부가 연방군을 투입한, 이른바 '유타전쟁' 까지 있었다.

유타는 1896년에야 미국의 45번째 주가 됐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한 일부 제도와 강령을 철폐.조정한 뒤의 일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겨울올림픽 유치를 네번째 신청해 겨우 성공했다.

그런데 유치과정의 뇌물 때문에 오히려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경쟁상대인 다른 도시들보다 심한 일이 없다" 고 변명하는 중에 섹스향응까지 불거져나오고 있으니 말이 아니다.

세속에 초연한 것으로 정평있는 모르몬교의 본산 (本山)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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