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 프로연맹 해묵은 갈등 수면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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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의 뿌리 깊은 갈등이 돌출하고 있다.

두 단체는 A매치 일정, 대표선수 차출, 프로연맹 정관 개정, 토토 수익금 배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대표 차출 거부”-“해외파 총동원”=24일 협회는 다음 달 5일 열리는 호주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무려 15명의 해외파 선수 소속 팀에 소집 요청 공문을 보냈다. 안정환(다롄 스더)·차두리(프라이부르크)·조재진(감바 오사카)·김남일(고베) 등 1년 이상 대표팀에 뽑지 않았던 ‘형님급’을 대거 불러들였다. 일부 축구팬은 “안정환·설기현 등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며 반기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연맹이 “K-리그 일정을 무시한 A매치의 날짜를 바꾸지 않으면 대표 선수들의 차출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도발’한 데 대해 협회가 ‘해외파 총동원령’으로 맞대응하는 형국이다. 호주전 다음 날인 9월 6일에 K-리그 일정이 잡혀 있는데도 협회는 리그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관중이 많이 모이는 토요일에 A매치 날짜를 잡았다.

연맹은 “협회가 프로 구단의 자산인 선수들을 뽑아가서 A매치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K-리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협회는 “10월 10일(토)로 예정된 세네갈과의 평가전은 K-리그 일정을 고려해 다른 날로 옮기도록 세네갈 측에 요청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연맹 ‘독립 선언’에 협회 “안 돼”=두 단체 간 가장 첨예한 사안은 연맹 정관 승인 건이다. 사단법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연맹은 새 정관에 대해 협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협회는 ‘회장 선임, 예산 구성 및 집행 등에 대해 협회의 승인을 받는다’는 조항을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연맹은 “사사건건 협회의 지시를 받는다면 법인이 아니다”라며 ‘연맹은 협회의 규정을 준수한다’는 선언적 내용만을 넣으려 한다.

프로야구나 농구, 배구 등은 아마추어 단체에 비해 프로스포츠 단체가 우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축구협회는 산하 단체인 연맹이 다른 종목처럼 독자적인 행보를 하려고 한다며 경계하고 있다.

축구복표 사업인 토토의 수익금 배분도 쟁점이다. 올해 3월 토토 수익금 230억원이 축구협회로 내려왔다. 협회는 6월 이사회에서 그동안 두 단체가 5대5로 균등 배분하던 수익금을 올해부터는 6대4로 협회 분을 늘리기로 의결했다. 협회는 “올해부터 시작한 초·중·고 연중리그를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연맹의 이준하 사무총장은 “토토 베팅 대상 대부분이 국내외 프로리그 경기인데 협회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연맹 몫을 뺏어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6년 정몽준 체제’ 뒤의 갈등=두 단체의 대립은 지난 연말 정몽준 협회 회장이 퇴임하고 나서 본격화했다.

1993년부터 16년간 협회장을 4연임했던 정 회장이 물러나면서 ‘힘의 공백’이 찾아왔다. 현 조중연 회장은 정 회장(현 명예회장)의 전폭적 지원 아래 협회 수장 자리에 올랐지만 전임 회장만큼의 장악력을 갖지 못했다.

반면 곽정환 연맹 회장은 정몽준 FIFA 부회장과 극심하게 대립했던 모하메드 함맘 AFC 회장과 가깝게 지내며 국제 축구계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조 회장과 곽 회장이 대척점에 서 있다 보니 협회와 연맹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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