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바란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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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15면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이집트 문명전: 파라오와 미라’가 인기리에 열리고 있다. 이 특별전의 입구엔 이집트를 대표하는 신들, 즉 사자(死者)의 신인 오시리스와 그의 부인 이시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호루스 등을 형상화한 벽화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사악한 형제인 세스와의 싸움으로 온몸이 14조각이 나 죽는다. 그러나 슬픔에 잠긴 부인 이시스가 시체를 다시 맞춰 살리고, 오시리스의 남근은 새로운 정기를 받아 지하세계의 신이 된다. 또 그들의 아들 호루스는 세스를 물리치고 왕이 된다.

적지 않은 종교사학자들은 죽음·부활·재생 등의 테마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오시리스 신화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성부·성자·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 교리나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예수의 메시지가 오시리스 신화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오시리스의 사지가 절단되는 과정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이미지와, 이시스가 죽은 시체를 다시 되살리는 과정은 마리아가 되살아난 예수를 만나는 장면과 비슷하다. 오시리스와 세스의 관계도 예수 혹은 야훼와 사탄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이런 죽음과 재생의 신화적 모티브는 다른 지역에서도 관찰된다. 예컨대 게르만 신화에서는 거인족과 싸우던 오딘이 늑대에게 먹혀 죽지만, 아들 바르도르가 되살려 놓는 내용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도 디오니소스의 사지가 절단된 후 재생되는 설정이 있다. 기독교·불교 등의 발달된 종교는 죽음과 재생·부활의 모티브를 보다 추상적인 상징으로 가르치고, 원시종교나 신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석 심리학자들은 종교 간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논쟁보다는 죽음과 부활·재생의 모티브 속에 공통적으로 숨어 있는 심리적 역동에 주목한다. 즉,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 상(像)의 분열과 통합, 생기와 자연에너지로서의 여성성, 절망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창조적 에너지의 상징들은 절망 중에서도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늙은 왕이 죽고 젊은 왕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과정은 집단이나 국가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지도자들이 본인이나 주위의 잘못으로 타락해 물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물러갈 때를 알아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새로운 역사가 열리기도 한다. 미개사회에서는 천재지변이나 전쟁의 패배로 공동체가 흔들릴 때 기존 지도자를 무참하게 살해하거나 방출하여 새 부족장을 주로 선출했지만, 민주사회에서는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올해 들어 두 분의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했다. 한 분은 공부가 경지에 오른 선비에게만 붙여주는 ‘선생’의 칭호를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다른 한 분 역시 누구보다 강력한 애증의 대상으로서 많은 이의 무의식에 숨은 콤플렉스를 건드려 격렬한 감정 반응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공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다양한 관점이 주류에 진입할 수 있었고 소외된 이에게 한 가닥 희망을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분열된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게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죽음이 어떤 새로움으로 재생하고 부활할 수 있을지는 결국 남은 이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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